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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 从은 "([[파일:从_1.png|20픽셀]])"나 "([[파일:从_2.png|20픽셀]])"라고 쓰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따라가는 것을 상형한 것이다. 후에 의부로 "止"가 추가되어 "([[파일:从_3.png|20픽셀]])"라고 쓰게 되었다. 금문의 서법은 꽤나 복잡한데, 이는 문자가 통일되기 이전의 혼란한 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기본 자소字素는 여전히 从의 기초 위에 行(彳)이나 辵을 덧붙여 동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전은 갑골문과 금문의 서법을 계승하여 "([[파일:从_4.png|20픽셀]])"(从), "([[파일:从_5.png|20픽셀]])"(從)이라고 쓴다. 예서(汉《礼器碑》)에서는 전서의 “辵,从”을 새로이 조합하여 "([[파일:从_6.png|20픽셀]])"라고 썼다. 이를 기점으로 고문자에서 벗어났고, 오늘날 간체자에서 "从"을 사용함으로써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었다.
 
갑골문 从은 "([[파일:从_1.png|20픽셀]])"나 "([[파일:从_2.png|20픽셀]])"라고 쓰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따라가는 것을 상형한 것이다. 후에 의부로 "止"가 추가되어 "([[파일:从_3.png|20픽셀]])"라고 쓰게 되었다. 금문의 서법은 꽤나 복잡한데, 이는 문자가 통일되기 이전의 혼란한 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기본 자소字素는 여전히 从의 기초 위에 行(彳)이나 辵을 덧붙여 동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전은 갑골문과 금문의 서법을 계승하여 "([[파일:从_4.png|20픽셀]])"(从), "([[파일:从_5.png|20픽셀]])"(從)이라고 쓴다. 예서(汉《礼器碑》)에서는 전서의 “辵,从”을 새로이 조합하여 "([[파일:从_6.png|20픽셀]])"라고 썼다. 이를 기점으로 고문자에서 벗어났고, 오늘날 간체자에서 "从"을 사용함으로써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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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2020년 12월 22일 (화) 19:01 기준 최신판

語源

좇을 종.PNG

“从”은 “從”의 간화자로, 옛날부터 있던 글자이다. 그러나 “从”에는 비교의 의미가 있고, 때로는 헷갈릴 수 있다. “從”은 오직 두 사람(혹은 세 사람)이 따라간다는 것을 의미하는 글자였는데, 나아가 추종, 순종 등의 의미로 파생되었다.

文化

설문해자주에 따르면 "从”은 듣는다는 뜻이며, 두 개의 '人(인)'으로 구성되었다. 从부에 속하는 한자는 모두 从의 의미를 따른다.[1] 고대중국인들은 '人'자를 상하로 뒤집거나 움직여, 혹은 '人'자와 '人'자를 조합한 서로 다른 구조를 이용해 많은 새로운 글자들을 창조하였는데, '從'자 역시 두 사람이 서로 각자를 좇고 있는 모습에서 탄생된 글자이다.[2]

갑골문 从은 "(从 1.png)"나 "(从 2.png)"라고 쓰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이 따라가는 것을 상형한 것이다. 후에 의부로 "止"가 추가되어 "(从 3.png)"라고 쓰게 되었다. 금문의 서법은 꽤나 복잡한데, 이는 문자가 통일되기 이전의 혼란한 현상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기본 자소字素는 여전히 从의 기초 위에 行(彳)이나 辵을 덧붙여 동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소전은 갑골문과 금문의 서법을 계승하여 "(从 4.png)"(从), "(从 5.png)"(從)이라고 쓴다. 예서(汉《礼器碑》)에서는 전서의 “辵,从”을 새로이 조합하여 "(从 6.png)"라고 썼다. 이를 기점으로 고문자에서 벗어났고, 오늘날 간체자에서 "从"을 사용함으로써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었다.

  1. 염정삼,『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384
  2. 세실리아 링크비스트,『한자왕국』,김하림, 청년사, 2002, p.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