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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에서는 “봄에 鄕人飮酒에서 거행하는 大射禮의 과녁이다. 人을 따른다. 厂을 따르고, 펼친 과녁을 본뜨고 있다. 矢는 그 아래에 있다. 天子는 곰, 호랑이, 표범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쏘는데, 맹수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諸侯는 곰과 호랑이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쏜다. 大夫는 큰사슴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쏜다. 士는 사슴과 돼지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쏘는데, 농사를 위해 해로운 것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 祝文에 이르기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제후가 못 되어 왕의 거처에서 알현을 하지 못함과 같이 되지 말지니라. 그래서 맞서서 너희를 쏘노라”라고 하였다.<ref> 중국 문자학 강의, 허진웅 저, 고려대학교출판부, p.345</ref> 언덕의 과녁으로 날아가는 화살을 그렸다. 활쏘기 연습하는 모습으로 봉건제 사회에서 제후의 신분을 나타냈다.<ref>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문자에 숨은 고대인의 삶을 찾아서, 김성재, 동녘, p.699</ref>
 
설문에서는 “봄에 鄕人飮酒에서 거행하는 大射禮의 과녁이다. 人을 따른다. 厂을 따르고, 펼친 과녁을 본뜨고 있다. 矢는 그 아래에 있다. 天子는 곰, 호랑이, 표범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쏘는데, 맹수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諸侯는 곰과 호랑이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쏜다. 大夫는 큰사슴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쏜다. 士는 사슴과 돼지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쏘는데, 농사를 위해 해로운 것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 祝文에 이르기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제후가 못 되어 왕의 거처에서 알현을 하지 못함과 같이 되지 말지니라. 그래서 맞서서 너희를 쏘노라”라고 하였다.<ref> 중국 문자학 강의, 허진웅 저, 고려대학교출판부, p.345</ref> 언덕의 과녁으로 날아가는 화살을 그렸다. 활쏘기 연습하는 모습으로 봉건제 사회에서 제후의 신분을 나타냈다.<ref>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문자에 숨은 고대인의 삶을 찾아서, 김성재, 동녘, p.699</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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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내용과 비슷하게『한자수4』에서는 고대 천자가 주최하는 활쏘기 시합은 사후(射侯)라고 불렸고 이 시합에서 명중을 하면 제후의 자리에 오르고 그러지 못하면 제후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ref>廖文豪, 『汉字树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ref> 여기서 侯에 제후라는 뜻이 생겨나게 되었고 제후라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원래는 矦로 쓰이던 것에서 옆에 人을 더해 侯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원래 의미는 巾을 더한 帿(과녁후)로 분화했는데 이것은 과녁을 베로 만들었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ref>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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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3일 (토) 20:32 기준 최신판

語源

제후 후.png

갑골문과 금문에서 侯자는 한 개의 화살이 과녁을 똑바로 향하여 가는 화살을 형상했다. 그 본래 의미는 과녁을 나타낸다. 상고시대에는 활과 화살은 사람들이 항상 사용하는 무기였다. 사람들 중에서 힘이 강하고 화살을 가장 잘 쏘는 사람이 늘 모두에 의해 추천되어 수령이 되었다. 활쏘기 중 과녁으로써의 侯는 활쏘기를 잘하는 것을 의미했고 따라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은 “侯”다. 후에 侯는 작위의 명칭이 되었는데, 다섯 개의 작위 중 제 2위였다. 또한 고관귀족 혹은 사대부 간의 존칭으로 간주될 수 있다.

文化

설문에서는 “봄에 鄕人飮酒에서 거행하는 大射禮의 과녁이다. 人을 따른다. 厂을 따르고, 펼친 과녁을 본뜨고 있다. 矢는 그 아래에 있다. 天子는 곰, 호랑이, 표범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쏘는데, 맹수를 굴복시키는 것이다. 諸侯는 곰과 호랑이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쏜다. 大夫는 큰사슴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쏜다. 士는 사슴과 돼지의 가죽으로 된 과녁을 쏘는데, 농사를 위해 해로운 것을 없애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 그 祝文에 이르기를 “편안하게 다스리는 제후가 못 되어 왕의 거처에서 알현을 하지 못함과 같이 되지 말지니라. 그래서 맞서서 너희를 쏘노라”라고 하였다.[1] 언덕의 과녁으로 날아가는 화살을 그렸다. 활쏘기 연습하는 모습으로 봉건제 사회에서 제후의 신분을 나타냈다.[2]

위에 내용과 비슷하게『한자수4』에서는 고대 천자가 주최하는 활쏘기 시합은 사후(射侯)라고 불렸고 이 시합에서 명중을 하면 제후의 자리에 오르고 그러지 못하면 제후가 될 수 없었다고 한다.[3] 여기서 侯에 제후라는 뜻이 생겨나게 되었고 제후라는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해 원래는 矦로 쓰이던 것에서 옆에 人을 더해 侯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원래 의미는 巾을 더한 帿(과녁후)로 분화했는데 이것은 과녁을 베로 만들었다는 뜻을 담았다고 한다. [4]

  1. 중국 문자학 강의, 허진웅 저, 고려대학교출판부, p.345
  2.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문자에 숨은 고대인의 삶을 찾아서, 김성재, 동녘, p.699
  3. 廖文豪, 『汉字树 4』, 甘肅人民美術出版社, 2015
  4.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