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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의 글자는 기둥과 대들보 위에 지붕을 씌운 모습이다. 움집보다 발달된 형태의 집이다.<ref>김성재 저,『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2000), p.184</ref><br>
 
금문의 글자는 기둥과 대들보 위에 지붕을 씌운 모습이다. 움집보다 발달된 형태의 집이다.<ref>김성재 저,『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2000), p.184</ref><br>
 
“宇”는 본래의 뜻으로부터 ‘넓은 활동공간’이라는 새로운 뜻이 파생되어 여러 단어들의 근간이 되었다.<ref>廖文豪,『汉字树3』(吉西平, 2015), p.84</ref>
 
“宇”는 본래의 뜻으로부터 ‘넓은 활동공간’이라는 새로운 뜻이 파생되어 여러 단어들의 근간이 되었다.<ref>廖文豪,『汉字树3』(吉西平, 2015), p.84</ref>
:[院宇] 원우,조선 중기 이후에 서원(書院), 사우(祠宇), 정사(精舍), 영당(影堂) 등의 통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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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院宇(원우)] 조선 중기 이후에 서원(書院), 사우(祠宇), 정사(精舍), 영당(影堂) 등의 통칭
:[宇宙] 세계(世界) 또는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을 포용하고 있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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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宇宙(우주)] 세계(世界) 또는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을 포용하고 있는 공간
:[室宇] 실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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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室宇(실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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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易经》:“上古穴居而野处,后世圣人易之以官室,上栋下宇,以待风雨。(상고시대에는 동굴과 들판에 거주했는데, 후대의 성인은 그것을 상동하우 형태의 관사로 바꾸고, 비바람을 막았다.)”<br>
 
《易经》:“上古穴居而野处,后世圣人易之以官室,上栋下宇,以待风雨。(상고시대에는 동굴과 들판에 거주했는데, 후대의 성인은 그것을 상동하우 형태의 관사로 바꾸고, 비바람을 막았다.)”<br>
 
이것에서 “上栋下宇(상동하우)”는 이층집 축사 형식의 건축물을 말하는데, “上冻”은 위층사람이 거주하는 화려한 방을 뜻하고, “下宇”는 아래층의 개방된 공간을 뜻한다. 아래층의 개방공간은 일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쉬는 공간, 그리고 동물을 기르는 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송(宋)의 원문(袁文)은 《옹유한평》에서 이것을 庭宇,院宇,宇下라고 설명했다.<ref>廖文豪,『汉字树3』(吉西平, 2015), p.84</ref><br>
 
이것에서 “上栋下宇(상동하우)”는 이층집 축사 형식의 건축물을 말하는데, “上冻”은 위층사람이 거주하는 화려한 방을 뜻하고, “下宇”는 아래층의 개방된 공간을 뜻한다. 아래층의 개방공간은 일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쉬는 공간, 그리고 동물을 기르는 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송(宋)의 원문(袁文)은 《옹유한평》에서 이것을 庭宇,院宇,宇下라고 설명했다.<ref>廖文豪,『汉字树3』(吉西平, 2015), p.84</ref><br>
서안시 동쪽 교외에는 반파촌(半坡村)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지금 섬서성의 성도로, 주나라부터 당나라까지 아홉왕조의 수도였다. 이 곳의 옛 집을 살펴보면, 먼저 네모나 원형으로 땅을 파고 그 안에 기둥을 세웠다. 그 위에 나무줄기를 걸치고, 풀로 이엉을 엮었다. 지붕 위에 진흙을 바르거나, 지붕에서 출입구까지 대들보를 세워 긴 입구를 만들기도 했다. 세 평부터 여섯 평으로 판 이 구덩이 집 안에서 다섯 명 정도 되는 한 가족이 거주했다. 집 한 구석에는 아궁이가 있어 난방을 하고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벽은 둥글게 쌓거나 네모나게 쌓았고, 출입구는 벽에 뚫어 놓은 구멍 하나였다. 거기에 외짝문(戶)을 달기도 했다. 벽에는 따로 창을 내지 않고 지붕 위에 연기가 빠지는 구멍을 뚫어 환기창을 만들기도 했다. 외짝문 하나 속에 한 식구가 모두 살았으므로, 오늘날 한 호구와 같았다. 지붕 아래 방 하나인 원룸 주택 가족인 셈이었다. 앙소인들이 이렇게 폐쇄적인 집을 지은 이유는 싸움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집의 문이 마을 한가운데 있는 광장을 향하도록 달려 있어 누가 소리쳐 부르면 금세 무기를 들고 뛰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ref>김성재 저,『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2000), pp.174~177</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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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안시 동쪽 교외에는 반파촌(半坡村)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지금 섬서성의 성도로, 주나라부터 당나라까지 아홉왕조의 수도였다. 이 곳의 옛 집을 살펴보면, 먼저 네모나 원형으로 땅을 파고 그 안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줄기를 걸치고, 풀로 이엉을 엮었다. 지붕 위에 진흙을 바르거나, 지붕에서 출입구까지 대들보를 세워 긴 입구를 만들기도 했다. 세 평부터 여섯 평으로 판 이 구덩이 집 안에는 다섯 명 정도 되는 한 가족이 거주했다. 집 한 구석에는 아궁이가 있어 난방을 하고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벽은 둥글게 쌓거나 네모나게 쌓았고, 출입구는 벽에 뚫어 놓은 구멍 하나였다. 거기에 외짝문(戶)을 달기도 했다. 벽에는 따로 창을 내지 않고 지붕 위에 연기가 빠지는 구멍을 뚫어 환기창을 만들기도 했다. 외짝문 하나 속에 한 식구가 모두 살았으므로, 오늘날 한 호구와 같았다. 지붕 아래 방 하나인 원룸 주택 가족인 셈이었다. 앙소인들이 이렇게 폐쇄적인 집을 지은 이유는 싸움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집의 외짝문이 마을 한가운데 있는 광장을 향하도록 달려있어 누가 소리쳐 부르면 금세 무기를 들고 뛰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ref>김성재 저,『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2000), pp.174~177</ref>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분류:한자어원문화사전]]

2016년 12월 25일 (일) 21:43 기준 최신판

語源

집우.png

집(宀)과 들보기둥(于) 아래의 활동공간을 말한다.[1]
금문의 글자는 기둥과 대들보 위에 지붕을 씌운 모습이다. 움집보다 발달된 형태의 집이다.[2]
“宇”는 본래의 뜻으로부터 ‘넓은 활동공간’이라는 새로운 뜻이 파생되어 여러 단어들의 근간이 되었다.[3]

[院宇(원우)] 조선 중기 이후에 서원(書院), 사우(祠宇), 정사(精舍), 영당(影堂) 등의 통칭
[宇宙(우주)] 세계(世界) 또는 천지간(天地間). 만물(萬物)을 포용하고 있는 공간
[室宇(실우)] 집


文化

《주역》에 기록되기를 상고시대 사람들은 동굴에서 거주하였고, 후대에 소위 “上栋下宇(상동하우)”를 만들어 거주하면서 이로써 비바람을 피하게 되었다고 한다.
《易经》:“上古穴居而野处,后世圣人易之以官室,上栋下宇,以待风雨。(상고시대에는 동굴과 들판에 거주했는데, 후대의 성인은 그것을 상동하우 형태의 관사로 바꾸고, 비바람을 막았다.)”
이것에서 “上栋下宇(상동하우)”는 이층집 축사 형식의 건축물을 말하는데, “上冻”은 위층사람이 거주하는 화려한 방을 뜻하고, “下宇”는 아래층의 개방된 공간을 뜻한다. 아래층의 개방공간은 일하는 공간일 뿐 아니라, 쉬는 공간, 그리고 동물을 기르는 용으로도 이용할 수 있었다. 송(宋)의 원문(袁文)은 《옹유한평》에서 이것을 庭宇,院宇,宇下라고 설명했다.[4]

서안시 동쪽 교외에는 반파촌(半坡村)이라는 마을이 있다. 이곳은 지금 섬서성의 성도로, 주나라부터 당나라까지 아홉왕조의 수도였다. 이 곳의 옛 집을 살펴보면, 먼저 네모나 원형으로 땅을 파고 그 안에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나무줄기를 걸치고, 풀로 이엉을 엮었다. 지붕 위에 진흙을 바르거나, 지붕에서 출입구까지 대들보를 세워 긴 입구를 만들기도 했다. 세 평부터 여섯 평으로 판 이 구덩이 집 안에는 다섯 명 정도 되는 한 가족이 거주했다. 집 한 구석에는 아궁이가 있어 난방을 하고 음식을 만들 수 있었다. 벽은 둥글게 쌓거나 네모나게 쌓았고, 출입구는 벽에 뚫어 놓은 구멍 하나였다. 거기에 외짝문(戶)을 달기도 했다. 벽에는 따로 창을 내지 않고 지붕 위에 연기가 빠지는 구멍을 뚫어 환기창을 만들기도 했다. 외짝문 하나 속에 한 식구가 모두 살았으므로, 오늘날 한 호구와 같았다. 지붕 아래 방 하나인 원룸 주택 가족인 셈이었다. 앙소인들이 이렇게 폐쇄적인 집을 지은 이유는 싸움에 대비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집의 외짝문이 마을 한가운데 있는 광장을 향하도록 달려있어 누가 소리쳐 부르면 금세 무기를 들고 뛰어나갈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5]

  1. 廖文豪,『汉字树3』(吉西平, 2015), p.84
  2. 김성재 저,『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2000), p.184
  3. 廖文豪,『汉字树3』(吉西平, 2015), p.84
  4. 廖文豪,『汉字树3』(吉西平, 2015), p.84
  5. 김성재 저,『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동녘, 2000), pp.174~1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