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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黃帝)의 사관 창힐은 새,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그 무늬[분리(分理)]가 서로 다른 것을 알고 처음으로 서계(書契)를 만들었는데 종류(類)에 따라 모양(形)을 상형하였으므로 그것을 문(文)이라 한다.<ref>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444</ref>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들 때 사물의 종류에 따라 형체를 본뜬 것을 문(文)이라 하였고, 그 후 의미와 소리를 더한 것을 자(字)라 하였는데, 즉 그림과 무늬라는 의미를 지닌 ‘문(文)’자는 문자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문(文)’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상형자는 표의문자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문자(文字)’로 인신된 것이다.  
 
황제(黃帝)의 사관 창힐은 새,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그 무늬[분리(分理)]가 서로 다른 것을 알고 처음으로 서계(書契)를 만들었는데 종류(類)에 따라 모양(形)을 상형하였으므로 그것을 문(文)이라 한다.<ref>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444</ref>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들 때 사물의 종류에 따라 형체를 본뜬 것을 문(文)이라 하였고, 그 후 의미와 소리를 더한 것을 자(字)라 하였는데, 즉 그림과 무늬라는 의미를 지닌 ‘문(文)’자는 문자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문(文)’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상형자는 표의문자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문자(文字)’로 인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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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文은 중국에서 언제나 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전통을 보여 왔는데, 이를 '文心'전통이라고 부른다. 文이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정신을 표명하게 된 것은 文의 어원이 시신에 칼집을 내어 영혼을 육체로부터 분리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자 하는 원시 무속적 행위에서 출발했고, 그런 文은 출발부터 인간의 영혼이 출입하는 문(門)으로서의 기능을 담았기 때문이다. 文의 이러한 속성은 文의 기능이 중국에서 문장(文章), 문식(文飾)을 넘어서 文心의 기능으로까지 옮겨간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ref>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31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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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4일 (토) 23:20 기준 최신판

語源

글월 문.png

‘문(文)’은 상형자이다. 갑골문과 금문의 문(文)자는 정면을 향해 서 있는 사람의 모습이고, 사람의 가슴에 뾰족한 것으로 찔러 각종무늬와 도안그림을 새겨둔 모양이다. 그 것은 사실 고대에 ‘문신(文身)’ 풍속을 묘사한 것이다. 그래서 ‘문(文)’자는 본래 몸 위에 그림을 새긴 사람을 가리키는 것을 의미하고 또 각종 무늬나 도안, 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후에 문자, 문장, 문화, 문명 등의 아주 많은 의미가 파생되었다.

文化

갑골문의 ‘문(文)’자는 ‘정면을 보고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이며, 가슴 부위에 무늬가 그려져 있다.’로 살필 수 있는데, ‘문(文)’의 본의는 ‘문신(紋身)’의 문(紋)자로, 종횡으로 교차된 무늬이다. 고대에는 종교적 의식과 아이가 성인이 되어 부족사회의 성원에 가입하기 위한 통과의례로서 신체에 문신[1]을 넣든가,(혹은 시체를 신성하게 치장하는 의식으로서 문신을 새기든가) 그림물감으로 장식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을 나타내는 것이 ‘문(文)’이라는 한자이다.[2] 《주례(周禮) · 고공기(考工記)》에 “푸른색(靑)과 붉은색(赤)으로 교차하여 그린 것을 문(文)이라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섞어서 그리는 한 방법이다.

후에는 일반적인 문양을 가리키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화려하다’, ‘우아하다’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한자를 문자라고 칭한 것은 진(秦)나라 시대의 『낭야석각(琊石刻)』의 ‘書同文字’(문자를 동일하게 한다.)에서 최초로 보인다. 한자를 ‘문(文)’이라고 칭하기도 하고, 『의례(儀禮) · 빙례(聘禮)』에서 ‘명(名)’이라고도 하였으며 『순자(荀子) · 해폐(解蔽)』에서는 ‘서(書)’라고도 하였다.[3]

황제(黃帝)의 사관 창힐은 새, 짐승의 발자국을 보고 그 무늬[분리(分理)]가 서로 다른 것을 알고 처음으로 서계(書契)를 만들었는데 종류(類)에 따라 모양(形)을 상형하였으므로 그것을 문(文)이라 한다.[4] 창힐이 처음 문자를 만들 때 사물의 종류에 따라 형체를 본뜬 것을 문(文)이라 하였고, 그 후 의미와 소리를 더한 것을 자(字)라 하였는데, 즉 그림과 무늬라는 의미를 지닌 ‘문(文)’자는 문자와 관계가 있기 때문에 ‘문(文)’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상형자는 표의문자의 기초가 되기 때문에 ‘문자(文字)’로 인신된 것이다.

또 文은 중국에서 언제나 정신과 밀접하게 연결되는 전통을 보여 왔는데, 이를 '文心'전통이라고 부른다. 文이 단순한 무늬가 아니라 정신을 표명하게 된 것은 文의 어원이 시신에 칼집을 내어 영혼을 육체로부터 분리시키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고자 하는 원시 무속적 행위에서 출발했고, 그런 文은 출발부터 인간의 영혼이 출입하는 문(門)으로서의 기능을 담았기 때문이다. 文의 이러한 속성은 文의 기능이 중국에서 문장(文章), 문식(文飾)을 넘어서 文心의 기능으로까지 옮겨간 데서도 잘 알 수 있다. [5]

  1. 시라카와 시즈카, 『한자의 기원』, 이다미디어, 2009, p.49
  2. 아쓰지 데쓰지, 『한자의 수수께끼』, 학민사, 2004, p.128
  3. 류지성, 『문화문자학』, 문현, 2011, pp.21-22
  4. 염정삼, 『설문해자주 부수자 역해』, 서울대학교출판부, 2007, p.444
  5. 하영삼, 『한자어원사전』, 도서출판3, 2014, p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