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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백성 민.png

고대의 노예 주인들은 노예에게 노동을 강요하기 위해 그들이 반역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종종 매우 잔혹하게 노예들을 억압하는 방법을 택하거나, 그들에게 매우 무거운 쇠고랑이나 족쇄를 씌웠다. 또는 밧줄을 이용하여 그들의 목을 묶거나, 발을 찍어 제거하서나, 날카로운 것을 사용하여 그들의 눈을 찔러 실명하게 했다. 갑골문, 금문의 ‘民’자는 송곳으로 눈을 찌르는 모습을 나타내며, 그 본뜻은 원래 노예를 가리키는 말이다. 여기서 ‘지배당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뜻이 파생되었고 이는 노예와 평민을 포함하다가, 후에 ‘일반 대중’ ‘국민’을 가리키게 되었다.

文化

民은 끝이 뾰족한 무기와 눈을 본뜬 글자로, 포로의 한쪽 눈을 까서 저항력을 무디게 한 뒤 노동력을 착취하던 노예제 사회의 살벌한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글자이다. 본뜻인 ‘노예’에서 점차 천민, 평민으로 뜻이 바뀌었다.[1]

노예를 일에만 부려먹되 전투는 못하도록 만든 방법이었다.[2]

民은 무지몽매한 백성의 뜻. 萌·氓·甿은 다 동의자로서 논밭에서 경작을 한 노예들. 갑골문자는 날카로운 도구로 눈을 찌른 형상이다. 그러므로 곽말약은 民을 盲의 초문으로 보았다. 즉 한 쪽 눈이 먼 포로로서 일을 하는 노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民’의 개념은 시대에 따라 달랐다. 진시황 때에는 검수(黔首), 주대에는 여민(黎民)이라고 칭하였다. 진나라는 오행설을 따랐다. 오행설에 따라 황제는 토덕, 하나라는 목덕, 은나라는 금덕, 주나라는 화덕을 하늘에서 받아 나라를 세웠으므로 주나라를 대신한 나라는 수덕이어야 한다. 진시황은 이 설을 채용하여 하늘의 뜻에 따라 수덕으로써 일어진 진나라는 전통적이며 신성한 왕조라고 주장하였다. 수의 색깔은 검정이다. 때문에 진시황은 의복과 깃발부절의 색깔을 모두 흑색으로 바꾸고 서민들은 머리에 검은 천을 두르라 하였고, 그들을 ‘검수黔首’라 불렀다. 설문에 따면 주대에는 백성을 ‘여민’이라고 칭했다.[3]

시라카와 시즈카는 民은 臣과 마찬가지로 神에게 바쳐진 노예라고 하였다.[4]

  1. 김언종, 『한자의 뿌리 1』, 문학동네, 2001, pp.330
  2. 김성재, 『갑골에 새겨진 신화와 역사』, 동녘, 2000, pp.555
  3. 이돈주, 『한자·한어의 창으로 보는 중국 고대문화』, 태학사, 2006, pp.59-60
  4. 시라카와 시즈카, 『漢子 백가지 이야기』, 심경호 역, 황소자리, 2005, pp.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