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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맹세맹.PNG

과거 맹세를 기념하고 그 내용을 기록하기 위해 동물의 피를 이용했는데 이를 맹서(盟誓)라고 했다. 여기서 誓는 서약을 의미하고, 盟은 동물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행위를 의미했다. 그릇 가득 담긴 피는 변함없는 약속의 이행을 위해 준비한 맹서에 쓰일 동물의 피이다. 여기에는 주로 소나 말이 희생(犧牲)으로 사용되었다. 갑골문이나 금문에서 보이는 것과 같이 그릇 가득 피가 담긴 모습을 그린 회의의 구조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릇 명()이 의미부이고 밝을 명()이 소리부인 형성구조를 이룬다.[1]

文化

1965년, 전국 시대 진(晉)나라의 유적지인 중국 산서성 후마(侯馬)라는 곳에서 5천여 점의 옥돌이 발견되어 사람들을 흥분시킨 적이 있다.

그것은 평범한 옥돌이 아니라 옥돌을 종이처럼 얇게 깎아서 그 위에 붉은 색으로 선명하게 글자를 새겨 넣은 진나라의 유물이었다. 판독 결과 이 글은 당시 진나라 대부였던 조앙(趙鞅)을 중심으로 그들 동족 간에 맹약을 다짐하고, 이를 어길 경우 어떠한 제재라도 감수하겠다고 언약한 것이었다. 이렇게 맹약의 내용을 적은 글을 맹서(盟誓) 혹은 재서(載書)라고 한다.

후마맹서.jpg

『주례』에 의하면 나라 간에 불협화음이 생기면 각 제후들이 일정한 장소에 모여 맹약을 했다 한다. 먼저 제후들이 모여서 합의를 도출한 다음 그것을 천지신명 앞에 서약하고, 이를 지킨다는 의미에서 동물의 피를 서로 나누어 마시며 남은 피로 그 내용을 옥에 기록하여 땅에 묻는다고 했다. 맹약을 위배하는 자는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여 처벌할 것을 천명하고 합의된 내용을 부본(副本)으로 남겨 두었다. 이러한 고대의 맹세 현장이 2500년 지난 오늘날 발굴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후마맹서이다.[2]

  1. 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8, pp.114-115
  2. 하영삼, 『문화로 읽는 한자』, 동방미디어, 1998, pp.114-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