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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정화의 여행은 외교를 위한 여행으로, 조카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영락제는 자신의 황제에 대한 취약한 정통성을 외국으로부터의 ‘조공’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는 중국의 ‘중화사상’에 입각한 것으로, 천자 즉 황제는 중국 주변 오랑캐로부터 ‘조공’을 받고, 그에 대해 답례를 하는 의식을 통해 ‘천하의 지배자’라는 ‘정통성’을 얻으려고 했다. 정화의 원정은 그러한 황제의 ‘정통성’을 찾는 막중한 임무였고, 세게 각지를 여행하며 중국 문명이 우세함을 자신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 비석을 세우고,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기록에 의하면 정화는 기린을 특산품으로 얻어 중국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중국의 특산품을 세계 각지에 답례품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반면 정화의 여행은 외교를 위한 여행으로, 조카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영락제는 자신의 황제에 대한 취약한 정통성을 외국으로부터의 ‘조공’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는 중국의 ‘중화사상’에 입각한 것으로, 천자 즉 황제는 중국 주변 오랑캐로부터 ‘조공’을 받고, 그에 대해 답례를 하는 의식을 통해 ‘천하의 지배자’라는 ‘정통성’을 얻으려고 했다. 정화의 원정은 그러한 황제의 ‘정통성’을 찾는 막중한 임무였고, 세게 각지를 여행하며 중국 문명이 우세함을 자신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 비석을 세우고,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기록에 의하면 정화는 기린을 특산품으로 얻어 중국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중국의 특산품을 세계 각지에 답례품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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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과 금문의 주(舟)자는 하나의 작은 나룻배를 단순화시킨 모양이다. 그 본 의미는 배이다. 주(舟)자는 기물의 이름으로도 사용되는데, 고대인들은 찻잔을 놓는 작은 쟁반을 ‘茶舟(차주)’라고 부른다. 현대인들은 ‘茶船(차선)’이라고도 부른다. 한자 중에서 대체로 주(舟)자를 부수로 하는 글자는 모두 배와 관련된 한자이다. 예를 들면, 航(배 항)∙舫(방주 방)∙舰(큰 배 함)∙艇(배 정)∙艘(배 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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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舟梁]: 부교, 배들이 연속해서 다리를 만들다. 또 ‘舟航’이라고도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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舟는 나무판으로 만든 작은 배를 멀리서 본 모양을 하고 있다. 약간 곡선의 형태를 이루는 직선은 배의 앞뒤가 약간 올라간 모양을 그린 것이고, 횡선은 양측 뱃전을 서로 연결하는 횡목 및 좌판을 그린 것이다. 『설문∙주부(舟部)』에서는 “舟는 배이다. 옛날 공고(共鼓)와 화적(貨狄)이 나무를 깎아서 배를 만들었고, 마루를 다듬어서 노를 만들었다. 상형문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단옥재는 『설문해자주』에서 “옛 사람들은 舟라 하였고, 한나라 사람들은 船이라 하였다. 공고와 화적은 황제, 요, 순 사이의 사람이다.”라고 해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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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웅은 『방언(方言』권9에서 “舟는 관(關)의 서쪽에서는 선(船)이라 하고, 관의 동쪽에서는 舟라 한다.”라고 하였다. 舟, 船은 서한시대에는 단지 방언상의 차이일 뿐이었지만, 선진 문헌에서는 대부분 舟자를 사용하였고, 서한 이후에는 船자가 점차 舟자를 대신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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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5일 (월) 23:56 기준 최신판

語源

배 주.png

갑골문과 금문의 배(舟) 글자는 작은 목선(木船)의 평범한 형상이고, 주된 의미는 곧 배를 뜻한다. 배는 또한 기물의 이름으로 사용되는데, 고대인은 차를 따르는 종지의 작은 쟁반을 ‘차주(茶舟)‘라고 했고 요즘은 ’차선(茶船)‘이라고 부른다. 한자 중에서 배 주 글자를 부수로 지닌 글자는 대부분 배 및 그에 작용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 예로는 항(항), 舫(배), 舰(군함 함), 艇(작은 배), 艘(척: 배를 세는 양사) 등이 있다.

文化

<배(舟) - 항해의 시작> [1] 중국의 중요한 교통수단 – 배

남선북마(南船北馬)라는 말이 있듯이, 남방 중국, 특히 장강 하류 일대에서는 배가 중요한 교통수단으로 되어 있어, 지금도 도로를 통행하는 것보다도 수로를 이용하는 편이 이동하는데 편리한 수향지역이 많이 있다. 장강을 비롯한 하천이나, 남쪽의 절강성 항주에서 북쪽의 북경 교외까지 남북 2천 킬로미터를 잇는 대운하는 옛날부터 교통과 수송의 대간선으로 이용되었고, 거기서는 배는 인간의 이동이나 물산의 수송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탈거리였다.[1]

[2] 배 주(舟) 글자의 기원 – 대나무 뗏목

고대 중국 상왕조가 통치했던 지역의 하류들은 종횡으로 얽혀 있었고, 호숫가에서의 생활이 가장 생기가 넘쳤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무겁지 않은 뗏목을 사용해 얕은 여울을 쉽게 통과했다. 청동기 시대의 뗏목은 대나무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오늘날 중국의 많은 뗏목 역시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배’라는 뜻의 ‘주(舟)’ 자의 옛 글자가 뗏목이나 배의 전형적인 모습과 극히 닮아 있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직선으로 된 이물과 고물이 분명하게 표현돼 있으며, 배의 방수벽도 보인다. 어떤 학자들은 중국배의 구조가 대나무 뗏목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사실 대나무 자체를 살펴보면 이는 충분히 증명된다. 즉 대나무 한 토막을 물 위에 띄워보면, 중국배의 원형과 얼마나 닮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의 강에는 많은 종류의 뗏목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즉 대나무 통의 가름대로 연결되고, 대나무의 가는 쪽이 앞을 향하고, 뗏목이 위쪽으로 휘어져 – 대나무를 불로 구우면 쉽게 휘어진다 ― 물 위에서 쉽게 나아갈 수 있도록 돼 있다. 이러한 배를 지닌 중국인들은 옛날부터 세계로 항해를 거듭했다. 중국 역사적으로 가장 큰 규모의 항해는 명나라 시대 1405-1433까지 환관 정화가 7번에 걸쳐 떠난 원정이었다. 당시 황제인 영락제의 명령으로 37개 국가를 방문했던 그는, 각국의 통치자와 연대를 맺고 예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약 100년 후 서양인들이 ‘신대륙’을 발견했다며 ‘대항해시대’를 열었는데 이는 유럽 제국들이 식민지를 확장하고 이교도들을 교화하려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 방법은 야만적이고 잔인했으며, 수많은 토착민들을 살육하고 그들의 문명을 파괴하고 지배했다.[2]

반면 정화의 여행은 외교를 위한 여행으로, 조카를 죽이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영락제는 자신의 황제에 대한 취약한 정통성을 외국으로부터의 ‘조공’에서 찾으려고 했다. 이는 중국의 ‘중화사상’에 입각한 것으로, 천자 즉 황제는 중국 주변 오랑캐로부터 ‘조공’을 받고, 그에 대해 답례를 하는 의식을 통해 ‘천하의 지배자’라는 ‘정통성’을 얻으려고 했다. 정화의 원정은 그러한 황제의 ‘정통성’을 찾는 막중한 임무였고, 세게 각지를 여행하며 중국 문명이 우세함을 자신 있게 보여주려고 했다. 그래서 세계 각지에 비석을 세우고, 중국 황제에게 조공을 바치라고 요구했다. 기록에 의하면 정화는 기린을 특산품으로 얻어 중국으로 가져오기도 하고, 중국의 특산품을 세계 각지에 답례품으로 전달했다고 한다.

語源

배 주2.png

갑골문과 금문의 주(舟)자는 하나의 작은 나룻배를 단순화시킨 모양이다. 그 본 의미는 배이다. 주(舟)자는 기물의 이름으로도 사용되는데, 고대인들은 찻잔을 놓는 작은 쟁반을 ‘茶舟(차주)’라고 부른다. 현대인들은 ‘茶船(차선)’이라고도 부른다. 한자 중에서 대체로 주(舟)자를 부수로 하는 글자는 모두 배와 관련된 한자이다. 예를 들면, 航(배 항)∙舫(방주 방)∙舰(큰 배 함)∙艇(배 정)∙艘(배 소)등이 있다.

[舟梁]: 부교, 배들이 연속해서 다리를 만들다. 또 ‘舟航’이라고도 부른다.

文化

<공고? 화적?>

舟는 나무판으로 만든 작은 배를 멀리서 본 모양을 하고 있다. 약간 곡선의 형태를 이루는 직선은 배의 앞뒤가 약간 올라간 모양을 그린 것이고, 횡선은 양측 뱃전을 서로 연결하는 횡목 및 좌판을 그린 것이다. 『설문∙주부(舟部)』에서는 “舟는 배이다. 옛날 공고(共鼓)와 화적(貨狄)이 나무를 깎아서 배를 만들었고, 마루를 다듬어서 노를 만들었다. 상형문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대해 단옥재는 『설문해자주』에서 “옛 사람들은 舟라 하였고, 한나라 사람들은 船이라 하였다. 공고와 화적은 황제, 요, 순 사이의 사람이다.”라고 해석하였다.

<舟와 船>

양웅은 『방언(方言』권9에서 “舟는 관(關)의 서쪽에서는 선(船)이라 하고, 관의 동쪽에서는 舟라 한다.”라고 하였다. 舟, 船은 서한시대에는 단지 방언상의 차이일 뿐이었지만, 선진 문헌에서는 대부분 舟자를 사용하였고, 서한 이후에는 船자가 점차 舟자를 대신하게 되었다.

  1. 아쯔지 데쯔지, “한자의 수수께끼”, 학민사, 2004, p.30
  2.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p.150-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