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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9월 6일 (화) 22:13 기준 최신판

語源

안 리.png

里자는 회의자이다. 里자는 밭과 흙의 뜻을 따르는데, 田이 수전을 가리킨다면, 土는 밭을 가리킨다. 고대 농업 사회에서는 밭과 땅이 있어야 생산이 가능하였고, 그래야만 생활과 거주가 가능하였다. 그래서 里의 본뜻은 주민이 집단으로 모여 사는 지방을 가리키는데, 그것이 곧 향리이며, 그 뜻이 파생되어 주민의 단위를 가리키게 되었다. 예를 들어 선진 시대에 “다섯 집이 邻(인)이 되고, 다섯 邻(인)이 里(리)가 되었다”라는 것이 있었는데, 즉 스물다섯 개의 가구가 하나의 “里(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里는 또한 길이의 단위로도 사용되며, 고대에는 백오십 丈이 일里(리)가 되었다.

裏와 里는 본래 완전히 다른 두 글자였다. 裏는 본래 의복의 안 부분을 가리켰다. ≪설문≫에서는 "裏는 옷의 안부분이다."라고 말하였다. 금문과 소전에서 모두 裏는 衣자의 안에 里를 덧붙인 형성자였다. 그러나 里는 사람이 거주하는 토지를 가리켰다. ≪설문≫에서는 "里는 거주하는 것이다. 田과 土의 의미를 따른다."라고 말하였다. 촌락과 향촌의 골목을 가리키는 글자는 금문, 소전 등의 자형에서 매우 비슷하였고, 모두 田과 土로 말미암아 만들어진 회의자였다. 하지만 현재 간체자에서는 통일되어 “里”가 “裏”를 대신하게 되었다.

文化

‘田’과 ‘土’가 결합하여 ‘마을’이라는 뜻의 ‘里’가 되었다. 최초의 몇몇 왕조시대에는 25戶가 하나의 리(里)를 이뤘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면서 토지에 대한 압력이 증가하자 ‘리’는 100호를 포함하는 단위로 변하게 되었다. ‘里’자는 또한 길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쓰이기도 하는데, 약 0.5km 정도를 가리킨다. 1958년에 일어난 문자개혁 후 ‘안쪽’을 나타내는 ‘리(裏)’자가 이 글자에 통합되었다.[1]

하지만 사람이 사는 '마을'이 본뜻이라고 하는데, 생각보다 설명이 부실하다. 경작지(田)와 주거지(土)를 합친 것이라는 설명은 土가 꼭 주거지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수긍이 어렵다. 土를 농작물의 생장을 가능케 하는 요소로 보고, 전체를 '농지가 갖추어진 곳'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土를 토지신의 사당으로 보는 견해도 있는데, 마을마다 서낭당 같은 게 하나씩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2]

  1. ≪한자왕국≫,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p.167
  2. ≪소리로 만든 글자 한자의 재발견≫, 이재황, p.4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