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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結繩의 정의== 숫자나 역사적 사건 등을 새끼나 가죽끈을 매어 그 매듭의 수효나 간격에 따라서 나타낸 일종의 문자.<br>글자가 없었던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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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繩의 정의==
 
==結繩의 정의==
숫자나 역사적 사건 등을 새끼나 가죽끈을 매어 그 매듭의 수효나 간격에 따라서 나타낸 일종의 문자.<br>글자가 없었던 미개사회에서 역일(曆日)이나 인원수 및 물건의 수량 등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각목(刻木)이나 결승을 사용한 실례는 많이 발견되는데, 고대 페루의 결승인 키푸(quipu)와 ‘결승의 제사’라는 말로 알려진 고대 중국의 결승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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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이란 일반적으로 끈이나 새끼 따위로 매듭을 짓는 행위, 또는 그 매듭을 뜻하나 이 문서에서는 결승문자(結繩文字)를 지칭한다. 숫자나 역사적 사건 등을 새끼나 가죽끈을 매어 그 매듭의 수효나 간격에 따라서 나타낸 일종의 문자.<br>글자가 없었던 미개사회에서 역일(曆日)이나 인원수 및 물건의 수량 등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각목(刻木)이나 결승을 사용한 실례는 많이 발견되는데, 고대 페루의 결승인 키푸(quipu)와 ‘결승의 제사’라는 말로 알려진 고대 중국의 결승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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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結繩==
 
==중국의 結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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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G 5007.JPG|150픽셀|섬네일|오른쪽|신농,산둥성 무량사의 한대 화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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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결승에 대한 실제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기록으로만 전한다. 『周易·繫辭傳下』에는 '옛날에는 결승으로써 다스렸는데, 후세의 성인이 그것을 서계로 바꾸었으며, 모든 관리들은 그것으로써 다스려지게 되고 모든 백성들도 그것으로 살펴지게 되었다'라 쓰여 있어 결승의 존재를 알렸으며 이를 인용해 『說文解字·序文』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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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농씨의 시대가 되자 결승에 의해 다스려지고 사물을 표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사물이 매우 번다해지고 과장과 사기라는 것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황제의 사관인 창힐은 조수의 발자국을 보고 문양에 따라 사물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처음으로 서계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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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해자에서는 결승을 한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한자 이전에 사용되던 표시체계로 제시한 것이다.『周易正義』에는 鄭玄(127~200)의 학설을 인용하여 '일이 크면 큰 매듭을 짓고, 일이 작으면 작은 매듭을 짓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대체로 믿을만 하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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許進雄은 결승의 풍습을 찾아볼 수 있는 글자로 祘(算의 고자)를 제시한다. 이 글자의 『설문해자』의 해석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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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祘는 밝게 보며 셈하는 것이다. 두개의 시(示)를 따른다.『逸周書』에 이르기를 선비가 백성에게 나누어 줄 때의 계산이다. 균등히 나누어 줌으로써 셈을 하는 것이다. 발음은 筭(산)과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b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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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중국 문자의 변천 추세로 이 글을 살펴본다면, 이 글자의 초기 자형은 가로로 매어있는 한 가닥의 굵은 새끼줄에 여러 개의 매듭을 지은 작은 새끼줄을 매달아 놓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나 후에 자형이 달라지고 와전되어 두개의 시(示)를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ref>許進雄,조용준 역,『중국 문자학 강의』,P.41,고려대학교 출판부,2013</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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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結繩은 漢字의 기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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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易』등의 기술에 근거하여 한자를 결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주장이 있다. 물론 신화,전설적인 기술에서는 서계 이전에 세계를 다스린 것은 결승이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기억이나 전달의 수단으로 삼은 것은 전세계에서 널리 행해졌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약속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의 보조장치였기 때문에 문자로써 기능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미의 結繩==
 
==남미의 結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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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결승문자.jpeg|300픽셀|섬네일|오른쪽|고대 페루와 전남 장성의 결승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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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키푸의 전통은 지금도 아메리카 인디언 사이에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결승에 대해서도 상세한 연구의 결과가 남아 있다. 잉카제국시대에 이 결승은 모든 물건의 수량을 기록하였고, 특히 납세사무에서는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사물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비록 한정되기는 했으나 몇몇 추상관념도 이것으로 표시하였고 역사적인 사건이나 법률의 포고문 역시 기록할 수 있는 유용한 보조수단이었다. <br />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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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푸는 길이 1m 안팎의 양모로 만든 가느다란 끈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각각 1 ·10 ·100 ·1,000의 단위를 나타내는 정해진 매듭을 만들어 구성한 표현수단이다. 이 키푸는 빛깔에 따라 내용을 구별하였는데, 예를 들면 빨강이면 군대를, 노랑 ·초록 ·흰색이면 각각 황금 ·백은(白銀) ·곡물을 표시한다는 방법으로, 여러 지방의 인구 ·생산물 및 그 수입 등의 수량이 키푸의 보관자들에 의하여 중앙에 집계되었다.<br />
* 두산동아 백과사전연구소,『두산세계대백과사전』, 두산동아, 2nd, 1998<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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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결승과 같은 수단을 사용하여 추상적 관념을 표시하기란 매우 어려워 소수의 관념만을 겨우 추상적으로 표시할 따름이었다. 예를 들면 흰 매듭이 평화를, 붉은 매듭이 전쟁을 나타내게 한다든가, 매듭의 단단함과 그 위치로 애정의 확실성 또는 일치감을 표시하는 따위가 그 한도일 것이다. 따라서 아메리카 인디언에서 알파벳을 표시하는 매듭을 만들어낸 사실은 오히려 드물게 보는 실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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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結繩 사용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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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1910년대 말까지 전남의 농촌에서 결승이 사용되었는데,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원칙적으로 5진법원리를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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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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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동아 백과사전연구소,『두산세계대백과사전』-「결승문자」, 두산동아, 2nd, 1998<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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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黃德寬,陳秉新 저, 하영삼 역, 『漢語文字學史』,P.27~P.29,東文選,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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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許進雄,조용준 역,『중국 문자학 강의』,P.41~42,고려대학교 출판부,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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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케다 마사야(武田雅哉),서은숙 역,『창힐의 향연-한자의 신화와 유토피아』, P.17~P.44,이산,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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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분류:중국문자]]
 
[[분류:중국문자]]

2017년 12월 26일 (화) 15:03 기준 최신판

結繩의 정의

결승이란 일반적으로 끈이나 새끼 따위로 매듭을 짓는 행위, 또는 그 매듭을 뜻하나 이 문서에서는 결승문자(結繩文字)를 지칭한다. 숫자나 역사적 사건 등을 새끼나 가죽끈을 매어 그 매듭의 수효나 간격에 따라서 나타낸 일종의 문자.
글자가 없었던 미개사회에서 역일(曆日)이나 인원수 및 물건의 수량 등을 기록하는 수단으로 각목(刻木)이나 결승을 사용한 실례는 많이 발견되는데, 고대 페루의 결승인 키푸(quipu)와 ‘결승의 제사’라는 말로 알려진 고대 중국의 결승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중국의 結繩

신농,산둥성 무량사의 한대 화상석

중국의 결승에 대한 실제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고 기록으로만 전한다. 『周易·繫辭傳下』에는 '옛날에는 결승으로써 다스렸는데, 후세의 성인이 그것을 서계로 바꾸었으며, 모든 관리들은 그것으로써 다스려지게 되고 모든 백성들도 그것으로 살펴지게 되었다'라 쓰여 있어 결승의 존재를 알렸으며 이를 인용해 『說文解字·序文』에는 이렇게 기록되었다.

"신농씨의 시대가 되자 결승에 의해 다스려지고 사물을 표시하게 되었다. 그러나 각양각색의 사물이 매우 번다해지고 과장과 사기라는 것이 싹트기 시작했다. 그래서 황제의 사관인 창힐은 조수의 발자국을 보고 문양에 따라 사물을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서 처음으로 서계를 만들었다."

설문해자에서는 결승을 한자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한자 이전에 사용되던 표시체계로 제시한 것이다.『周易正義』에는 鄭玄(127~200)의 학설을 인용하여 '일이 크면 큰 매듭을 짓고, 일이 작으면 작은 매듭을 짓는다'라고 되어 있는데 대체로 믿을만 하다.

許進雄은 결승의 풍습을 찾아볼 수 있는 글자로 祘(算의 고자)를 제시한다. 이 글자의 『설문해자』의 해석은 아래와 같다.

"'祘는 밝게 보며 셈하는 것이다. 두개의 시(示)를 따른다.『逸周書』에 이르기를 선비가 백성에게 나누어 줄 때의 계산이다. 균등히 나누어 줌으로써 셈을 하는 것이다. 발음은 筭(산)과 같다고 해석하고 있다.

만약 중국 문자의 변천 추세로 이 글을 살펴본다면, 이 글자의 초기 자형은 가로로 매어있는 한 가닥의 굵은 새끼줄에 여러 개의 매듭을 지은 작은 새끼줄을 매달아 놓은 모양을 하고 있었으나 후에 자형이 달라지고 와전되어 두개의 시(示)를 따르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한다.[1]

結繩은 漢字의 기원인가?

『周易』등의 기술에 근거하여 한자를 결승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주장이 있다. 물론 신화,전설적인 기술에서는 서계 이전에 세계를 다스린 것은 결승이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기억이나 전달의 수단으로 삼은 것은 전세계에서 널리 행해졌고, 그것은 어디까지나 약속한 것을 잊지 않기 위한 기억의 보조장치였기 때문에 문자로써 기능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미의 結繩

고대 페루와 전남 장성의 결승문자

페루의 키푸의 전통은 지금도 아메리카 인디언 사이에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의 결승에 대해서도 상세한 연구의 결과가 남아 있다. 잉카제국시대에 이 결승은 모든 물건의 수량을 기록하였고, 특히 납세사무에서는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사물에 대한 기록뿐 아니라, 비록 한정되기는 했으나 몇몇 추상관념도 이것으로 표시하였고 역사적인 사건이나 법률의 포고문 역시 기록할 수 있는 유용한 보조수단이었다.

키푸는 길이 1m 안팎의 양모로 만든 가느다란 끈에 적당한 간격을 두고 각각 1 ·10 ·100 ·1,000의 단위를 나타내는 정해진 매듭을 만들어 구성한 표현수단이다. 이 키푸는 빛깔에 따라 내용을 구별하였는데, 예를 들면 빨강이면 군대를, 노랑 ·초록 ·흰색이면 각각 황금 ·백은(白銀) ·곡물을 표시한다는 방법으로, 여러 지방의 인구 ·생산물 및 그 수입 등의 수량이 키푸의 보관자들에 의하여 중앙에 집계되었다.
그러나 결승과 같은 수단을 사용하여 추상적 관념을 표시하기란 매우 어려워 소수의 관념만을 겨우 추상적으로 표시할 따름이었다. 예를 들면 흰 매듭이 평화를, 붉은 매듭이 전쟁을 나타내게 한다든가, 매듭의 단단함과 그 위치로 애정의 확실성 또는 일치감을 표시하는 따위가 그 한도일 것이다. 따라서 아메리카 인디언에서 알파벳을 표시하는 매듭을 만들어낸 사실은 오히려 드물게 보는 실례이다.

기타 結繩 사용 사례

한국에서는 1910년대 말까지 전남의 농촌에서 결승이 사용되었는데, 지방에 따라 다소의 차이는 있으나 원칙적으로 5진법원리를 적용했다.

참고문헌

  • 두산동아 백과사전연구소,『두산세계대백과사전』-「결승문자」, 두산동아, 2nd, 1998
  • 黃德寬,陳秉新 저, 하영삼 역, 『漢語文字學史』,P.27~P.29,東文選,2000
  • 許進雄,조용준 역,『중국 문자학 강의』,P.41~42,고려대학교 출판부,2013
  • 다케다 마사야(武田雅哉),서은숙 역,『창힐의 향연-한자의 신화와 유토피아』, P.17~P.44,이산,2004

주석

  1. 許進雄,조용준 역,『중국 문자학 강의』,P.41,고려대학교 출판부,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