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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보태 원년(531), 이주세륭 등은 장광왕 원엽을 폐위시키고 광릉왕 원공을 황제로 세우니 이 이가 바로 절민제로 연호를 보태로 개원했다. 진주의 지세가 험준한 요충지에 웅거하던 고환은 시기가 이미 무르익었다고 보고 보태 원년 6월, 신도에서 기병하여 [[이주씨]]를 토벌했다. 고환은 북위 초기 장군이었던 고호의 증손자다. 고환은 어려서부터 선비족 사람 틈에서 자랐으며 후에 역시 선비족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고환은 신도에서 기병한 후 지방 세력가인 고건, 봉륭지와 결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수단을 동원해 민심을 조작했다. 그는 이주조가 장차 육진(六鎭)의 투항한 귀순자들인 강호(降戶)를 계호(契胡)에게 분배하여 그 부하로 삼게 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유포하자 [[육진의 강호]]들은 격노했다. 고환은 바로 이런 육진의 강호를 기반으로 한족 명문가와 연대하여 기병하여 계호 이주씨를 공격했다. 고환은 기병 후 사기 충전하여 진격하는 내내 성을 공격하며 그 땅을 빼앗고 잇달아 승전보를 전하였다. 보태 원년 10월 초, 고환은 손등지의 계책에 따라 신도에서 발해태수 안정왕 원랑을 황제에 오르게 하여 신도성 서쪽에서 즉위시키고 중흥으로 개원한 후 자신은 승상을 맡았다. 이주영과 고환은 한릉(지금의 하남 안양시 동북)에서 결전을 벌여 이주씨가 대패했다. 한릉전투로 이주씨의 사기는 크게 손상을 입은 반면 고환은 자신의 패업을 위한 든든한 토대를 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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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보태 원년(531), 이주세륭 등은 장광왕 [[원엽]]을 폐위시키고 광릉왕 원공을 황제로 세우니 이 이가 바로 [[절민제]]로 연호를 보태로 개원했다. 진주의 지세가 험준한 요충지에 웅거하던 [[고환]]은 시기가 이미 무르익었다고 보고 보태 원년 6월, 신도에서 기병하여 이주씨를 토벌했다. 고환은 북위 초기 장군이었던 고호의 증손자다. 고환은 어려서부터 선비족 사람 틈에서 자랐으며 후에 역시 선비족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고환은 신도에서 기병한 후 지방 세력가인 고건, 봉륭지와 결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수단을 동원해 민심을 조작했다. 그는 이주조가 장차 육진(六鎭)의 투항한 귀순자들인 강호(降戶)를 계호(契胡)에게 분배하여 그 부하로 삼게 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유포하자 [[육진의 강호]]들은 격노했다. 고환은 바로 이런 육진의 강호를 기반으로 한족 명문가와 연대하여 기병하여 계호 이주씨를 공격했다. 고환은 기병 후 사기 충전하여 진격하는 내내 성을 공격하며 그 땅을 빼앗고 잇달아 승전보를 전하였다. 보태 원년 10월 초, 고환은 손등지의 계책에 따라 신도에서 발해태수 안정왕 원랑을 황제에 오르게 하여 신도성 서쪽에서 즉위시키고 중흥으로 개원한 후 자신은 승상을 맡았다. 이주영과 고환은 한릉(지금의 하남 안양시 동북)에서 결전을 벌여 이주씨가 대패했다. 한릉전투로 이주씨의 사기는 크게 손상을 입은 반면 고환은 자신의 패업을 위한 든든한 토대를 다졌다.

2016년 6월 21일 (화) 14:17 판

북위 보태 원년(531), 이주세륭 등은 장광왕 원엽을 폐위시키고 광릉왕 원공을 황제로 세우니 이 이가 바로 절민제로 연호를 보태로 개원했다. 진주의 지세가 험준한 요충지에 웅거하던 고환은 시기가 이미 무르익었다고 보고 보태 원년 6월, 신도에서 기병하여 이주씨를 토벌했다. 고환은 북위 초기 장군이었던 고호의 증손자다. 고환은 어려서부터 선비족 사람 틈에서 자랐으며 후에 역시 선비족 여인을 아내로 삼았다. 고환은 신도에서 기병한 후 지방 세력가인 고건, 봉륭지와 결탁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수단을 동원해 민심을 조작했다. 그는 이주조가 장차 육진(六鎭)의 투항한 귀순자들인 강호(降戶)를 계호(契胡)에게 분배하여 그 부하로 삼게 할 것이라는 거짓말을 유포하자 육진의 강호들은 격노했다. 고환은 바로 이런 육진의 강호를 기반으로 한족 명문가와 연대하여 기병하여 계호 이주씨를 공격했다. 고환은 기병 후 사기 충전하여 진격하는 내내 성을 공격하며 그 땅을 빼앗고 잇달아 승전보를 전하였다. 보태 원년 10월 초, 고환은 손등지의 계책에 따라 신도에서 발해태수 안정왕 원랑을 황제에 오르게 하여 신도성 서쪽에서 즉위시키고 중흥으로 개원한 후 자신은 승상을 맡았다. 이주영과 고환은 한릉(지금의 하남 안양시 동북)에서 결전을 벌여 이주씨가 대패했다. 한릉전투로 이주씨의 사기는 크게 손상을 입은 반면 고환은 자신의 패업을 위한 든든한 토대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