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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주(周)나라가 국왕의 혈족들에게 지방을 나누어 가지게 한 [[봉건 제도]]는 국왕의 힘이 지방까지 미치지 않는 지방분권적인 모습이다. 그렇기에 영토를 다스리는 귀족의 힘은 커지지만 왕은 세력이 점점 약해지는 결과를 보였다. 이와 달리 군현제를 실시한 진(秦)나라는 중앙은 황제가 다스리고 나머지 지방은 [[가신]]과 혈족이 아닌 황제 임명의 지방관이 파견되어  모든것이 황제 중심의 아주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지배방식을 보였다.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전국칠옹이 모두 이 제도를 채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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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현제에서 파견된 관리는 군(郡)에서는 태수(太守), 현(縣)에서는 현령(縣令)으로 불렸으며 원칙적으로 그 지방의 행정권만을 가질 뿐이고 왕의 명령에 따라 임명과 해임이 자유롭게 이루어 졌다. 그들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봉급을 받는 관직으로 이전처럼 영지를 세습 할 수는 없었다. 군과 현 사이에는 통속관계가 없었지만 통할지역이 넓어지다 보니 현이 설치되면서 관계가 발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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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토에서 발생한 군현제의 시작은 진(秦)의 [[시황제(始皇帝)로서 그가 6국을 통일한 후 기원전 221년 정도에 군을 36개 국으로 나누고 직접 황제가 임명한 관리를 파견한 지방행정제도로 이것이 완전한 군현제의 모습을 갖춘 시초이다. 이후 시대 한대(漢代)에도 군현제가 시행되었으며 청대(淸代)까지 약 2000년 동안 존속하였던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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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14일 (토) 02:37 판

전국 시대에 강력한 군주 권력의 출현을 뒷받침 할만한 제도로 군주가 지방을 통할하고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목적으로 나라에 속한 몇 개의 읍을 포함한 더 넓은 지역에 자신의 가신을 파견하여 읍을 행정적으로 지배하는 것 . 군 (郡) 이 현 (縣)을 통괄한다는 의미.


기원

BC 350년 전 진(秦) 나라 효공(孝公) 이 상앙(한자)의 정책 건의를 바탕으로하여 처음 시행된 제도로 나라 안의 작은 촌락을 합쳐 41현을 설치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춘추 시대 말기에 처음 현(縣)이 등장하였다. 그러나 그 당시는 귀족들이 영지를 세습하고 분할되었고 현(縣)은 제후가 봉하여준 토지를 몰수하였거나, 새로 점령한 영토에만 설치되는 등 중앙과의 관계가 그리 밀접하지 않았다. 춘추 시대 말기에서 부터 각국의 싸움이 더욱 치열하자 서민도 군인의 역할을 의무적으로 해야할 경우가 생겼다. 이를 반대하는 서민의 저항을 누르면서 국왕으로서의 지배권 확립을 강화하기 위해 관리를 파견하고 현(縣) 을 이전과 달리 재편성하는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점차 국가가 이를 통괄하고 군대를 주둔하는 제도를 시행하였고 이것이 기초가 되어 군현제가 나온 것이다.

개요

과거 주(周)나라가 국왕의 혈족들에게 지방을 나누어 가지게 한 봉건 제도는 국왕의 힘이 지방까지 미치지 않는 지방분권적인 모습이다. 그렇기에 영토를 다스리는 귀족의 힘은 커지지만 왕은 세력이 점점 약해지는 결과를 보였다. 이와 달리 군현제를 실시한 진(秦)나라는 중앙은 황제가 다스리고 나머지 지방은 가신과 혈족이 아닌 황제 임명의 지방관이 파견되어 모든것이 황제 중심의 아주 강력한 중앙집권적인 지배방식을 보였다.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는 전국칠옹이 모두 이 제도를 채용하였다. 군현제에서 파견된 관리는 군(郡)에서는 태수(太守), 현(縣)에서는 현령(縣令)으로 불렸으며 원칙적으로 그 지방의 행정권만을 가질 뿐이고 왕의 명령에 따라 임명과 해임이 자유롭게 이루어 졌다. 그들은 중앙에서 내려오는 봉급을 받는 관직으로 이전처럼 영지를 세습 할 수는 없었다. 군과 현 사이에는 통속관계가 없었지만 통할지역이 넓어지다 보니 현이 설치되면서 관계가 발생하였다. 중국 전토에서 발생한 군현제의 시작은 진(秦)의 [[시황제(始皇帝)로서 그가 6국을 통일한 후 기원전 221년 정도에 군을 36개 국으로 나누고 직접 황제가 임명한 관리를 파견한 지방행정제도로 이것이 완전한 군현제의 모습을 갖춘 시초이다. 이후 시대 한대(漢代)에도 군현제가 시행되었으며 청대(淸代)까지 약 2000년 동안 존속하였던 제도이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