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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9일 (월) 00:58 판

중앙

[1]

이름 굴원(屈原)/ 현대한어 병기:[QūYuán]
생몰 년도 B.C 340~B.C 278(추정년도)
출생 지역 중국 호북성(湖北省)
생존 시기 전국시대(戰國時代
관련 분야 정치, 문학
주요저서 초사(楚辭), 이소(離騷), 어부사(漁父辭)


굴원의 생애

문학적 성취

굴원은 시인으로서, 그로부터 중국엔 문학으로 세간에 이름을 날린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는 초사(楚辭)란 문체를 창안했고, 이로 작품을 남겼는데, 《한서·예문지(漢書·藝文志)》에 따르면 모두 25편(篇)에 달한다고 한다. 비록 몇몇 작품은 굴원의 저작인지가 의심이 가는 것이 있지만 그래도 굴원의 저작으로 보이는 작품들이 다수를 점한다. 이를테면 그 유명한 《이소(離騷)》가 바로 그 예이다. 《이소》는 굴원의 가장 주요적인 작품으로, 초국의 특수한 명물들을 묘사하였다. 
굴원의 작품은 충군애국(忠軍愛國)의 사상이 충만했는데, 소인배가 국가에 해를 가져오는 것을 청소하며, 군주의 혼용을 원망해 초국을 진흥시키고자 하는 포부가 이 속에 담겨져 있다. 열렬히 이상을 추구하여, 몸소 순국할 것을 감원하였던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그 작품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굴원의 작품은 개인 품격과 고양, 그리고 속세에 더렵혀지지 않고 이상을 좇으며 견정불굴의 태도를 드러내기도 하는데, 특히 《어부사(漁夫辭)》에서 이가 두드러진다.

작품소개 및 해석

이소(離騷)

《이소》는 굴원의 정치 이상을 담았고, 군소한 소인배들을 비평하여 초왕이 참언을 맹신한 것을 타격했다. 그 이상은 비록 이루어지지 못하였으나 자신은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 《이소》의 설상(設想)은 위로는 하늘을, 아래로는 대지에 이르는데, 위로 하늘임금(天帝)의 문을 두드렸으나 그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굴원의 진지는 갈 길이 없었고, 따라서 나라와 멀리 떨어진 지역으로 가고자 한 생각과 자신의 옛 고향을 보고 싶은 마음에 최종적으로 이신순국(以身殉國)을 택하였다. 《이소》는 굴원이 유배 중에 쓴 작품들의 대표 작품으로, 그의 일생 중 가장 위대한 시편이라 평해지고 있다. 전편 373행, 모두 합해 2,490자, 굴원의 자신의 사상, 감정, 상상, 인격을 모두 융합시켜 찬란하고 아름다운 문체와 고도의 예술 수법으로 자신의 역사와 고달한 정치 이념을 경토하였으며, 혼용적인 왕실과 부패한 귀족에 대한 분노를 담아내었다. 《이소》는 낭만주의 색채를 가지는데 이는 특히 후반부에서 두드러진다. 그는 비흥(比興) 수법을 썼는데, 생동적인 비유는 하나의 유달한 풍경을 자아낸다.

애영(哀郢)

《애영》은 그의 국도의 함몰과 국가 앞날에 대한 무한한 애상을 경소하며, 국가가 무너지고 가정이 황폐해지는 원인을 지적해냈다. 본편은 진국의 장수 백기가 영을 돌파하여 초왕이 진을 옮긴 해에 지어졌으며 그가 봄에 영을 떠나 하수를 지나 하포에 이르렀음을 서술하였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비통한 마음은 깊어만 갔는지, 편중에 민생의 흔들림과 무너짐, 백성의 이산(離散), 대하(大夏)가 언덕이 되어버리는, 동문이 황폐해진 이야기가 담겨 있고, 이는 확실히 국파가망의 아픔이 서려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편중에 그가 차라리 고향에서 죽길 바라는 정서가 드러나 있고, 향토와 국토를 상도 하는 심후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 《애영》 중 표면상으로 드러난 감정은 가장 우울하고, 가장 애고(哀苦)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