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1번째 줄: 1번째 줄:
 
오늘날 대만의 어떤 묘당에는 문간에 두 명의 고대 무장들이 좌우로 채색되어 벌려 세워져 있다. 커다란 무장의 상인데 산과 땅을 움직일만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 연원이 아주 오래인 두 명의 대문신인데, [[진경]]과 [[위지공]]이다.
 
오늘날 대만의 어떤 묘당에는 문간에 두 명의 고대 무장들이 좌우로 채색되어 벌려 세워져 있다. 커다란 무장의 상인데 산과 땅을 움직일만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 연원이 아주 오래인 두 명의 대문신인데, [[진경]]과 [[위지공]]이다.
 
<br>문신(門神)은 중국의 민간에서 가장 폭 넓게 나타나는 신 중의 하나이다. 역사도 오래이고, 영향권도 넓고,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신성보다 두드러진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문신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말하고자 한다면 불가불 상고시대 사람들이 문을 향해 제사하고 문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걸어놓았던 풍속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r>문신(門神)은 중국의 민간에서 가장 폭 넓게 나타나는 신 중의 하나이다. 역사도 오래이고, 영향권도 넓고,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신성보다 두드러진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문신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말하고자 한다면 불가불 상고시대 사람들이 문을 향해 제사하고 문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걸어놓았던 풍속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br>고대의 원시시대 사람들은 최초에는 '소거'생활로부터 시작하여 '혈거'생활로, 그러다가 점차 가옥생활로 진화하여 나갔다. 띠풀과 쑥대를 이용하여 집을 짓는 방법을 배운 것은 인류의 거대한 진보를 이룩한 사건이었다. 가옥은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을뿐만 아니라 야수나 사람의 침범을 막을 있고, 음식이나 재산을 보호할 수 있게 하여 주며, 사람들이 편안하게 안식할 있게 한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문을 신으로 받아들여 열광적으로 모시게 된다. 일찍이 주나라 시대에 벌써 문에 제를 올리는 풍습이 나타난다. 주방이나 사직(토지)에 제사를 드렸던 것과 같은 의식이 움직인 결과물이다.
+
<br>문신의 등장과 고대인의 귀신숭재는 서로 관련되어 있는 의식이다. 은나라나 주나라에서는 귀신을 숭상하였다. 사람들은 엄청난 사건이나 괴이한 이야기 등의 배후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귀신을 숭해하였다. 이것은 귀신에 대한 심리적 공포감을 갖도록 이끌어 주었다. 방과 문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적들이 침입하여 들어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옛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는 아주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귀신과 신성을 불러들여 자기 집을 안전하게 지키게 하고자 하는 요구는 여전할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문신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집과 집 안에서 사는 그들의 생명, 집 안에 간직한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게 하였다.
 +
<br>최초로 등장하는 문신은 두 명의 '도인桃人'이다. 이것은 복숭아나무를 이용하여 신상을 깎은 것으로 문 위에 걸어 놓는다. 전설에 의하면 그 두 명은 황제의 명을 받아 '귀문鬼門'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을 해치는 악귀가 출현하면 그들은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이이 막바로 떨치고 일어나 악귀가 나타난 뒷산으로 달려가 노호하며, 요괴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숭아나무를 써서 두 신상을 만든 후 춘절에 문 위에 건다. 그렇게 하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집 안이 1년 동안 평안할 있다는 것이다. 복숭아나무 인형을 깎는 것은 조금은 성가신 일이여서 점차 간소화 되어 갔다. 나무판 위에는 두 신의 초상을 그려 두거나 두 신의 이름을 써 놓기도 한다.
 +
<br>그 다음으로 출현하는 전문적인 귀신쫓기 문신은 그 이름도 빛나는 [[종욱]]鍾旭이다. 그 이후에는 역사상 이름 높았던 무장들이 문신으로 숭배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무장 출신 문신들은 비록 신격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신다, 욱루, 종욱 등의 문신 등과 비교해 보면 '신성'의 요소는 약하고 '인간성'의 요소가 강하게 엿보인다.

2016년 5월 30일 (월) 21:50 판

오늘날 대만의 어떤 묘당에는 문간에 두 명의 고대 무장들이 좌우로 채색되어 벌려 세워져 있다. 커다란 무장의 상인데 산과 땅을 움직일만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 연원이 아주 오래인 두 명의 대문신인데, 진경위지공이다.
문신(門神)은 중국의 민간에서 가장 폭 넓게 나타나는 신 중의 하나이다. 역사도 오래이고, 영향권도 넓고,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신성보다 두드러진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문신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말하고자 한다면 불가불 상고시대 사람들이 문을 향해 제사하고 문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걸어놓았던 풍속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신의 등장과 고대인의 귀신숭재는 서로 관련되어 있는 의식이다. 은나라나 주나라에서는 귀신을 숭상하였다. 사람들은 엄청난 사건이나 괴이한 이야기 등의 배후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귀신을 숭해하였다. 이것은 귀신에 대한 심리적 공포감을 갖도록 이끌어 주었다. 방과 문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적들이 침입하여 들어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옛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는 아주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귀신과 신성을 불러들여 자기 집을 안전하게 지키게 하고자 하는 요구는 여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문신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집과 집 안에서 사는 그들의 생명, 집 안에 간직한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게 하였다.
최초로 등장하는 문신은 두 명의 '도인桃人'이다. 이것은 복숭아나무를 이용하여 신상을 깎은 것으로 문 위에 걸어 놓는다. 전설에 의하면 그 두 명은 황제의 명을 받아 '귀문鬼門'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을 해치는 악귀가 출현하면 그들은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이이 막바로 떨치고 일어나 악귀가 나타난 뒷산으로 달려가 노호하며, 요괴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숭아나무를 써서 두 신상을 만든 후 춘절에 문 위에 건다. 그렇게 하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집 안이 1년 동안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숭아나무 인형을 깎는 것은 조금은 성가신 일이여서 점차 간소화 되어 갔다. 나무판 위에는 두 신의 초상을 그려 두거나 두 신의 이름을 써 놓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출현하는 전문적인 귀신쫓기 문신은 그 이름도 빛나는 종욱鍾旭이다. 그 이후에는 역사상 이름 높았던 무장들이 문신으로 숭배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무장 출신 문신들은 비록 신격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신다, 욱루, 종욱 등의 문신 등과 비교해 보면 '신성'의 요소는 약하고 '인간성'의 요소가 강하게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