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신"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4번째 줄: 4번째 줄:
 
<br>최초로 등장하는 문신은 두 명의 '도인桃人'이다. 이것은 복숭아나무를 이용하여 신상을 깎은 것으로 문 위에 걸어 놓는다. 전설에 의하면 그 두 명은 황제의 명을 받아 '귀문鬼門'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을 해치는 악귀가 출현하면 그들은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이이 막바로 떨치고 일어나 악귀가 나타난 뒷산으로 달려가 노호하며, 요괴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숭아나무를 써서 두 신상을 만든 후 춘절에 문 위에 건다. 그렇게 하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집 안이 1년 동안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숭아나무 인형을 깎는 것은 조금은 성가신 일이여서 점차 간소화 되어 갔다. 나무판 위에는 두 신의 초상을 그려 두거나 두 신의 이름을 써 놓기도 한다.
 
<br>최초로 등장하는 문신은 두 명의 '도인桃人'이다. 이것은 복숭아나무를 이용하여 신상을 깎은 것으로 문 위에 걸어 놓는다. 전설에 의하면 그 두 명은 황제의 명을 받아 '귀문鬼門'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을 해치는 악귀가 출현하면 그들은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이이 막바로 떨치고 일어나 악귀가 나타난 뒷산으로 달려가 노호하며, 요괴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숭아나무를 써서 두 신상을 만든 후 춘절에 문 위에 건다. 그렇게 하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집 안이 1년 동안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숭아나무 인형을 깎는 것은 조금은 성가신 일이여서 점차 간소화 되어 갔다. 나무판 위에는 두 신의 초상을 그려 두거나 두 신의 이름을 써 놓기도 한다.
 
<br>그 다음으로 출현하는 전문적인 귀신쫓기 문신은 그 이름도 빛나는 [[종욱]]鍾旭이다. 그 이후에는 역사상 이름 높았던 무장들이 문신으로 숭배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무장 출신 문신들은 비록 신격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신다, 욱루, 종욱 등의 문신 등과 비교해 보면 '신성'의 요소는 약하고 '인간성'의 요소가 강하게 엿보인다.
 
<br>그 다음으로 출현하는 전문적인 귀신쫓기 문신은 그 이름도 빛나는 [[종욱]]鍾旭이다. 그 이후에는 역사상 이름 높았던 무장들이 문신으로 숭배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무장 출신 문신들은 비록 신격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신다, 욱루, 종욱 등의 문신 등과 비교해 보면 '신성'의 요소는 약하고 '인간성'의 요소가 강하게 엿보인다.
 +
<br>훗날에는 다만 귀신과 요괴를 쫓아내는 한 가지 기능을 행사하는 무장 문신만으로는 사람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어 문관 문신, 기복祈福 문신 등이 등장하게 된다. 기복 문신에게는 사람들의 관운, 재산증식, 수복, 장생 등에 대한 염원과 기원이 덧붙여진다. 기복문신의 몸체 위에는 항상 상서로운 것들이 한 가지씩 그려져 있다. 그 길한 것을 불러들이기 위함인데, 대부분 발음상의 유사점을 이용하여 둘을 서로 연관시키고자 하는 의도이다.
 +
<br>이와 같이 문신은 사악한 악마를 구축하고, 가옥을 수호하고, 평안을 보장하고, 이익을 얻도록 도와주고, 상스런 일들을 불러오는 등의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보호신으로 민간에서 모셔 지는 여러 신들 중에서 가장 환영받는 신 중의 하나가 되어 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성가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

2016년 5월 30일 (월) 22:09 기준 최신판

오늘날 대만의 어떤 묘당에는 문간에 두 명의 고대 무장들이 좌우로 채색되어 벌려 세워져 있다. 커다란 무장의 상인데 산과 땅을 움직일만한 힘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것들은 그 연원이 아주 오래인 두 명의 대문신인데, 진경과 위지공이다.
문신(門神)은 중국의 민간에서 가장 폭 넓게 나타나는 신 중의 하나이다. 역사도 오래이고, 영향권도 넓고, 종류도 다양하다. 어떤 신성보다 두드러진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문신의 출발점이 어디인가 말하고자 한다면 불가불 상고시대 사람들이 문을 향해 제사하고 문에 복숭아나무 가지를 걸어놓았던 풍속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문신의 등장과 고대인의 귀신숭재는 서로 관련되어 있는 의식이다. 은나라나 주나라에서는 귀신을 숭상하였다. 사람들은 엄청난 사건이나 괴이한 이야기 등의 배후에 귀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 귀신을 숭해하였다. 이것은 귀신에 대한 심리적 공포감을 갖도록 이끌어 주었다. 방과 문을 만들 수 있게 되어 적들이 침입하여 들어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옛 사람들은 그것만으로는 아주 안전하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귀신과 신성을 불러들여 자기 집을 안전하게 지키게 하고자 하는 요구는 여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문신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집과 집 안에서 사는 그들의 생명, 집 안에 간직한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게 하였다.
최초로 등장하는 문신은 두 명의 '도인桃人'이다. 이것은 복숭아나무를 이용하여 신상을 깎은 것으로 문 위에 걸어 놓는다. 전설에 의하면 그 두 명은 황제의 명을 받아 '귀문鬼門'을 지키는 역할을 수행한다. 사람을 해치는 악귀가 출현하면 그들은 무슨 말을 할 필요도 없이이 막바로 떨치고 일어나 악귀가 나타난 뒷산으로 달려가 노호하며, 요괴들은 그 모습을 보기만 하여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복숭아나무를 써서 두 신상을 만든 후 춘절에 문 위에 건다. 그렇게 하면 악귀가 들어오지 못하고 집 안이 1년 동안 평안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복숭아나무 인형을 깎는 것은 조금은 성가신 일이여서 점차 간소화 되어 갔다. 나무판 위에는 두 신의 초상을 그려 두거나 두 신의 이름을 써 놓기도 한다.
그 다음으로 출현하는 전문적인 귀신쫓기 문신은 그 이름도 빛나는 종욱鍾旭이다. 그 이후에는 역사상 이름 높았던 무장들이 문신으로 숭배되는 사례가 나타난다. 무장 출신 문신들은 비록 신격을 갖추기는 하였지만 신다, 욱루, 종욱 등의 문신 등과 비교해 보면 '신성'의 요소는 약하고 '인간성'의 요소가 강하게 엿보인다.
훗날에는 다만 귀신과 요괴를 쫓아내는 한 가지 기능을 행사하는 무장 문신만으로는 사람들의 다양한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게 되어 문관 문신, 기복祈福 문신 등이 등장하게 된다. 기복 문신에게는 사람들의 관운, 재산증식, 수복, 장생 등에 대한 염원과 기원이 덧붙여진다. 기복문신의 몸체 위에는 항상 상서로운 것들이 한 가지씩 그려져 있다. 그 길한 것을 불러들이기 위함인데, 대부분 발음상의 유사점을 이용하여 둘을 서로 연관시키고자 하는 의도이다.
이와 같이 문신은 사악한 악마를 구축하고, 가옥을 수호하고, 평안을 보장하고, 이익을 얻도록 도와주고, 상스런 일들을 불러오는 등의 여러 기능을 수행하는 보호신으로 민간에서 모셔 지는 여러 신들 중에서 가장 환영받는 신 중의 하나가 되어 있고,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성가가 흔들림 없이 유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