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실패를 보는 한 지식인의 고민과 갈등 - 사회주의는 이기적 인간성을 변화시킬 수 없는 것인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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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강연에서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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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사회주의 변화를 놓고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승리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타당성과 문제성의 양면이 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생존능력이 사회주의의 작용 없이 그 자체로서 원형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론으로서는 사회주의적 생산조직과 정치조직의 실패에 대한 지적은 수긍할 만하다. 변증법적 대상으로서 맑스주의에 대한 대응, 수용의 과정을 거친 것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시점에서는 자기개혁기에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최근의 사회주의 변화를 놓고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승리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타당성과 문제성의 양면이 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생존능력이 사회주의의 작용 없이 그 자체로서 원형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론으로서는 사회주의적 생산조직과 정치조직의 실패에 대한 지적은 수긍할 만하다. 변증법적 대상으로서 맑스주의에 대한 대응, 수용의 과정을 거친 것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시점에서는 자기개혁기에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2016년 12월 13일 (화) 21:04 판

이 강연에서 리영희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최근의 사회주의 변화를 놓고서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승리로 바라보는 시각에는 타당성과 문제성의 양면이 있다. 서구 자유민주주의 사상의 생존능력이 사회주의의 작용 없이 그 자체로서 원형적으로 우월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과론으로서는 사회주의적 생산조직과 정치조직의 실패에 대한 지적은 수긍할 만하다. 변증법적 대상으로서 맑스주의에 대한 대응, 수용의 과정을 거친 것이 오늘날의 자유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시점에서는 자기개혁기에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어찌됐든 공산주의‧사회주의의 역사적 패배인 것이다. 자본주의는 사회보장‧복지국가 지향을 계속적으로 이어오고 있다. 무엇이 영향을 미쳤는가. (변증법적인 자기지양의 노력이다). 예컨대 미국사회는 자기혁신의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범죄‧마약의 타락한 사회가 되었다. 특히 자국 내에서는 일정한 정도의 자유‧평화‧발전을 유지했다 하더라도 국외적으로는 후진사회‧국가를 지속적으로 억압해왔다.

사회주의에 대한 전면적 규정은 곤란하지만, 자본주의에 흡수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사회주의의 역할은 이제 자본주의 내에서 하위변수로서 개방작업을 계속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지난 시기 우리의 유일한 대안이었던 맑스주의의 진로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인가에 대한 불확실성이 우리 지식인의 고뇌이다.

이제 우리는 다시 인간이란 무엇인가, 왜 세계는 이 같은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는가에 대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역사를 통해 인간은 부단히 도덕적 사회의 건설 가능성에 대한 고민과 실천을 모색해왔다. 소련‧동구의 부정적 상황은 우리를 당혹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이들 사회에 대한 우리의 성찰이 충분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그들 사회의 '아름다운 생활양식을 구축하고 있다'는 이상적 과장된 사고로써 보고 있었던 것에 불과하다.

도덕성이 지배하는 철학‧사회구조‧정책 등이 쉽게 파괴되는 현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문화대혁명 때나 1976년의 당산 대지진 때 보여준 중국인민들의 자기희생적‧영웅적 행동이 미국 뉴욕 시가 12시간 동안 정전되었을 때 나타난 인간의 동물화‧비인간화와 비교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인간이란 어떠한 존재인가를 다시 한 번 돌이켜보아야 한다. 유한한 자원 속에서 무한정한 인간의 욕구는 인간의 이기주의적‧생물학적 동물성과 결합한다. 사회가 인간을 완전히 규정할 수는 없다."


이 강연에서 한 청년이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선생님,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것은 선생님의 인간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을 도덕적으로 개조 가능한 것으로 파악한 사회주의적 인관관은 오류였으며 사회주의의 실패는 그 같은 인간관이 오류였음을 경험적으로 확인해주고 있다고 지적한 선생님은 마침내 '어째서 비도덕적이고 이기적인, 사악한 인간들이 이 세계에서 오히려 승리하는가. 가슴이 아프지만 인간은 바로 그와 같은 존재'라는 결론에 이르고 있습니다.


리영희는 또한 언론인 권영빈과 가진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발언하였다.

기자 : 1991년 1월 소장 정치학자들과의 모임에서 리 교수는 "사회주의 실패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간과한 데 있다"는 주목할 만한 발언을 했다. 새로운 변신의 노력인가, 지난 논리의 수정을 뜻하는가?

리영희 : 사회주의라는 구조만 갖추면 사회주의적 도덕인간을 만든다는 구조결정론에 대한 반성이었다. 교조적 결정론에 대한 회의, 김일성주의를 과신하는 학생세력에 대한 비판이기도 했다. 허황된 구조결정론과 사회주의 인간상에 대한 비판이었다. 나치가 꿈꾸었던 이상적 아리아족이나 마오쩌둥의 문화혁명, 김일성의 인간형이 모두 인간의 본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는 환상에 불과하다.

기자 : 운동권 대학생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상적 대부로서 이들에 대한 배신이 아닌가?

리영희 : 현실적으로는 자기부정이라는 측면이 있지만, 나는 일관되게 인간의 자유로운 사고와 자율적 판단의 주체로서 인간상을 추구해왔다. 솔직히 말한다면 그전에는 자본주의에 4, 사회주의에 6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인위적 인간 조형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강요된 것인가를 확인했다. 새로운 자각이었다. 한순간의 폭력으로 계급혁명이 이뤄지는 사회여서는 안 되고 긍정과 부정을 적절히 배합하는 사회를 그 간담회에서 말했다. 이런 변화가 나 자신의 성장이라고 본다. 상황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나의 변화다. 죽을 때까지 배운다는 심정이다. 새로운 전환시대를 맞고 있지만 딱 맞는 대체논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지적 지평이 확대되었고 중심이 이동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인간소외‧비인간적인 억압 요소들이 존재한다. 이젠 체제나 제도보다는 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사고, 구체적 인간의 구체적 행복을 위해 지식인이 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