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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때 기용된 인물. [[염철전매]], [[평준균수법]] 등의 재정정책을 펴는데 크게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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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152-B.C.80 <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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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 상인의 아들로서 13세부터 시중(侍中)으로서 [[무제]]를 보필하였다. 38세에 대농승(大農丞)에 임명된 후부터 무제가 사망하기까지 근 29년 동안 재정을 관장하였다. 그는 무제의 적극적인 대외확장 정책으로 재정이 고갈되어가자 재정확충을 위한 여러 정책을 건의하고 추진하였다. 이로써 무제가 시행한 거의 모든 정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였는데, 덕분에 무제의 신임을 얻어 단 한 차례의 실각도 없이 장기간 고위관료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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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염철전매]]와 술(酒) 전매를 시행하였다. 염철 전매제도를 시행한지 10년이 지나서 평준법과 균수법을 새로이 추진하였다.<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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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80년 75세의 나이로 모반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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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인물]][[분류:한나라| ]]

2016년 6월 21일 (화) 16:45 기준 최신판

B.C.152-B.C.80
낙양 상인의 아들로서 13세부터 시중(侍中)으로서 무제를 보필하였다. 38세에 대농승(大農丞)에 임명된 후부터 무제가 사망하기까지 근 29년 동안 재정을 관장하였다. 그는 무제의 적극적인 대외확장 정책으로 재정이 고갈되어가자 재정확충을 위한 여러 정책을 건의하고 추진하였다. 이로써 무제가 시행한 거의 모든 정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였는데, 덕분에 무제의 신임을 얻어 단 한 차례의 실각도 없이 장기간 고위관료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염철전매와 술(酒) 전매를 시행하였다. 염철 전매제도를 시행한지 10년이 지나서 평준법과 균수법을 새로이 추진하였다.
기원전 80년 75세의 나이로 모반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