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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문은 당나라 때 발견된 석각 자료의 일종이다. 북처럼 생긴 큰 돌에 [[주문]]籒文/[[대전]](大篆)으로 4언시가 새겨져 있다.  
 
석고문은 당나라 때 발견된 석각 자료의 일종이다. 북처럼 생긴 큰 돌에 [[주문]]籒文/[[대전]](大篆)으로 4언시가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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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초 천흥현(지금의 섬서성 봉상현) 총 10개의 흑청색의 단단한 화강암이 발견되었고 현재는 북경의 고궁박물원에 보관되고 있다. 이 돌은 북과 같이 생겼기에 ‘석고(石鼓)’라고 부르게 되었고,  거기에 새겨진 문자를 석고문(石鼓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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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고는 1미터 남짓의 높이의 돌 겉면에 각각 60~70자로 된 총 600여 자의 4언시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많이 손상되어 약 2~3백여 글자만 알아볼 수 있고 전해지고 있다. 석고에 새겨진 내용은 주 왕이 수렵을 즐기는 것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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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2022년 12월 22일 (목) 11:30 판

개요

석고문은 당나라 때 발견된 석각 자료의 일종이다. 북처럼 생긴 큰 돌에 주문籒文/대전(大篆)으로 4언시가 새겨져 있다.

발견

당나라 초 천흥현(지금의 섬서성 봉상현) 총 10개의 흑청색의 단단한 화강암이 발견되었고 현재는 북경의 고궁박물원에 보관되고 있다. 이 돌은 북과 같이 생겼기에 ‘석고(石鼓)’라고 부르게 되었고, 거기에 새겨진 문자를 석고문(石鼓文)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특징

석고는 1미터 남짓의 높이의 돌 겉면에 각각 60~70자로 된 총 600여 자의 4언시가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많이 손상되어 약 2~3백여 글자만 알아볼 수 있고 전해지고 있다. 석고에 새겨진 내용은 주 왕이 수렵을 즐기는 것 등이다.

연대

문자형태

의의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