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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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정(聶政)

출생 미상
사망 BC.397년

섭정은 전국시대의 자객으로, 지(軹) 지방 심정(深井)마을 사람이다. 그에 대한 기록은 사기의 자객열전에서 찾을 수 있다.

생애

섭정은 본래 한(韓)나라 지(軹) 지방 사람이였으나 사람을 죽이고 어머니와 누이 섭영(聶榮)을 데리고 제(齊)나라로 달아나 백정일을 하며 살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엄중자(嚴仲子)란 사람이 한나라의 애후(哀候)를 섬겼으나, 재상이자 군주의 숙부인 협루(俠累)와 사이가 나빠 급기야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 도망쳐,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자신을 대신해 원수를 갚아 줄 사람을 찾았다.
그러다 제나라에 이르러 섭정의 소문을 듣고 가 친해지기를 청한 뒤 오가기를 자주 하였고, 이후에 술자리를 벌여 섭정의 어머니에게 직접 술을 올리기도 할 정도로 친밀해졌다. 술자리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엄중자는 황금 2000냥을 들고서 섭정의 어머니의 장수를 축원하였는데, 섭정은 많은 양의 예물에 놀라면서, 괴이히 여기며 거절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게는 다행히 늙은 어머니가 계십니다. 집이 비록 가난하고 타향살이를 하느라 개나 돼지 잡는 일을 하고 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맛있고 부드러운 음식을 얻어 어머니를 봉양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봉양할 음식은 직접 마련할 수 있으니 당신이 주는 것은 받을 수 없습니다."

엄중자는 사람들을 내보낸 뒤 섭정에게 이 금을 받고 자신의 원수를 갚아달라고 거듭 요청하였다.

"내게는 원수가 있는데 그 원수를 갚아줄 사람을 찾아 제후들의 나라를 두루 돌아다녔습니다. 제나라에 와서 당신의 의기가 몹시 높다는 말을 듣고 황금 2000냥을 드려 어머니의 음식비용이나 쓰시게 하여 서로 더욱 친하게 사귀자는 뜻이었지 어찌 감히 달리 바라는게 있겠습니까?"

하지만 섭정은 어머니를 모시는 동안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맡길 수 없다며 계속 거절하였다.

"제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여 시장 바닥에서 백정 노릇을 하는 까닭은 늙으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서 입니다. 어머니께서 세상을 살아계신 동안에는 제 몸을 다른 사람에게 감히 바칠 수 없습니다."

비록 거절했음에도 엄중자는 끝까지 예의를 다하고 물러갔다. 한참이 지난 뒤, 섭정의 어머니가 죽자, 섭정은 상을 치른 후 엄중자의 제의를 생각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 나는 시장 바닥에서 칼을 잡고 짐승을 잡는 백정일 뿐인데, 엄중자는 제후의 대신이요, 재상 신분으로 천 리 길도 멀다 않고 수레를 몰고 찾아와 나를 사귀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내 대우는 너무나도 조촐하였고, 지금까지 그에게 이렇다 할 공도 세우지 못하였다. 엄중자는 황금 2000냥을 주며 돌아가신 어머니의 장수를 축원해 주었다.

"내 비록 그 돈을 받지는 않았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한 것은 나를 특별히 깊이 알아주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어진 사람이 격분하여 원수를 쏘아보면서 나같은 시골뜨기를 가까이하고 믿어주었으니, 내 어찌 가만히 있으리!
또 전날 그가 나를 필요로 하였으나 나는 늙은 어머니가 계시다는 핑계로 응하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이제 오래살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나는 앞으로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일하리라!"

이후 엄중자를 찾아가 자신이 그 원수를 갚아주겠다고 했다. 엄중자는 그에게 거마와 장사들을 지원해주려 했으나 섭정은 사람이 많으면 정보가 새어나가 일을 그르칠 수 있다 하여 모든 지원을 거절하고 홀로 떠나갔다. 이후 섭정은 한나라에 이르렀는데 마침 협루가 관청 당상에 앉아 있었고 많은 경비가 그를 지키고 있었다.
섭정이 곧장 들어가 계단을 뛰어 올라 협루를 찔러 죽이니, 주위 부하들은 크게 혼란스러워 제대로 싸우지 못했고 섭정이 고함을 치며 이들을 모두 죽이고 마지막에는 스스로 자신의 얼굴 가죽을 벗기고 눈을 도려내고 배를 갈라 창자를 끄집어내고 죽었다. 한나라에서는 섭정의 시체를 거두어 시장 바닥에 펼쳐놓고 신원을 확인하려 했으나 아는 자가 없었다. 그래서 공개적으로 현상금을 내걸고 찾았으나 역시 소득이 없었다.

한편 섭정의 누이 섭영(聶榮)은 이 소문을 듣고 소리내어 울면서 말했다.

"그는 내 동생일 것이다. 아! 엄중자가 내 동생을 알아주었구나!"

곧장 한나라 시장으로 가서 확인해보니 죽은 자는 정말로 섭정이였다. 섭영은 곧 시체위에 엎드려 소리내어 울고 몹시 슬퍼하며 그가 섭정임을 말했다. 시장사람들은 지나가며 섭정에게 현상금이 걸려서 섭영 자신의 목숨이 위험할 수 있는데도 스스로 나서는지 의아해했다. 이에 섭영이 이렇게 대답했다.

"섭정이 오욕을 무릅쓰고 시장 바닥에 몸을 던진 건 늙은 어머니께서 살아 계시고 제가 시집을 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천수를 누리다 돌아가시고 저도 이젠 시집을 갔습니다.
일찍이 엄중자는 제 동생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곤궁하고 천한 지위에 있는 그와 사귀었으니 그 은택이 매우 두텁습니다.
어쩌겠습니까! 선비를 본래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죽는다고 합니다. 섭정은 제가 살아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습을 훼손시켜 이 일에 연루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어찌 제게 닥칠 죽음이 두려워 동생의 장한 이름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이 말을 하고 이윽고 하늘을 우러러 큰 소리로 세번 외치더니 몹시 슬퍼하다가 마침내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

이 이야기는 진,초,제,위나라에 퍼졌고, 세간에서는 이렇게 말하였다.

"섭정만 위대한 게 아니라 그 누이도 장한 여인이다. 섭정의 누이가 참고 견디는 성격이 아니라서 시신이 버려지고 해골이 드러나는 고통을 두려워 않고 천리 험한 길을 달려와 이름을 나란히 하여 남매가 함께 한나라 시장 바닥에서 죽음을 맞을 줄 섭정이 미리 알았더라면 감히 엄중자에게 자신을 바치지는 않았으리라.

엄중자도 인물을 알아보는 안목이 있어 용감한 선비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사기 이외의 기록

대의 저서인 태평어람 중 [대주정락] 부분, 후한시기 채옹금조 에도 일화가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한나라 왕을 죽인 이유가 다르게 기록이 되어있다. 간략하게 서술하면 이렇다.

"섭정의 아버지는 섭정이 태어나기 전부터 한나라 왕의 검을 만드는 일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기한을 지키지 못하자, 한나라 왕이 명을 내려 그를 죽여버렸다. 이후 섭정이 태어나 장성하여 어머니께 아버지에 대해 묻게 되니, 어머니는 그 이유를 말해주었고, 섭정은 이 원수를 갚고자 맹세하고, 한나라 왕을 죽였다."

죽림칠현의 일원인 혜강은, 섭정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광릉산(廣陵散)] 이라는 곡을 만들었는데, '중국 10대 고곡(古曲)'으로 칭해진다. 아무에게도 이 곡을 가르치지 않고서, 사마소에 의해 처형당하기 전 담담히 거문고를 요청하고는, 이 곡을 연주하며 '광릉산은 이제부터 없어지는구나'며 탄식했다고 한다.

섭정의 이야기는 1967년 장철 감독에 의해 [대자객]이라는 이름으로 영화화도 되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