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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키츠의 연속혁명)
(마오쩌둥의 연속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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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은 1958년 1월 28일 최고국무회의에서 행해진 비공개연설에서 처음으로 연속혁명의 개념을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빠른 경제발전과 함께 이데올로기 혁명을 점점 더 급진적으로 계속 진행시켜야만 대중의 잠재적 생산능력을 완전히 방출시킬 수 있다고보았다. 또한 이로 인해 자본주의로의 후퇴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1949년 이후로 중국의 혁명은 중단없이 이루어져 왔다고 설명하였다. 토지개혁운동을 완수하면서 부르주아 혁명단계가 사회주의로 이행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전환되는 ‘위대한 기술혁명’인 [[대약진운동]]을 진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역사발전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이행할 필요없이 경제발전과 상부구조의 사회주의적 전환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인간의 올바른 혁명 의식과 강한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따라서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사람이 결정적 요인이다”, “사람은 기계보다 더 중요하다”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웠다. 여기서 도시주민이 아닌 선진적 농민의 힘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대약진운동 시기 연속혁명은 바로 농촌혁명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1958년 1월 28일 최고국무회의에서 행해진 비공개연설에서 처음으로 연속혁명의 개념을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빠른 경제발전과 함께 이데올로기 혁명을 점점 더 급진적으로 계속 진행시켜야만 대중의 잠재적 생산능력을 완전히 방출시킬 수 있다고보았다. 또한 이로 인해 자본주의로의 후퇴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1949년 이후로 중국의 혁명은 중단없이 이루어져 왔다고 설명하였다. 토지개혁운동을 완수하면서 부르주아 혁명단계가 사회주의로 이행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전환되는 ‘위대한 기술혁명’인 [[대약진운동]]을 진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역사발전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이행할 필요없이 경제발전과 상부구조의 사회주의적 전환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인간의 올바른 혁명 의식과 강한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따라서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사람이 결정적 요인이다”, “사람은 기계보다 더 중요하다”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웠다. 여기서 도시주민이 아닌 선진적 농민의 힘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대약진운동 시기 연속혁명은 바로 농촌혁명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br>이러한 마오의 연속혁명론은 그가 갖고 있던 주의주의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주의주의적 사상이 내포한 연속혁명론은 그 기저에 '후진성의 이점'이라는 마오의 인식이 들어가 있다. '후진성의 이점'이란 혁명에서 후진성이 오히려 유리함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인데, 마오는 중국인의 '빈곤'과 '백지'에서 후진성의 이점을 찾았다. 중국인민은 가난하기 때문에 변화와 혁명, 즉 연속혁명을 원한다. 그리고 백지의 상태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이념을 올바르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br>이러한 마오의 연속혁명론은 그가 갖고 있던 주의주의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주의주의적 사상이 내포한 연속혁명론은 그 기저에 '후진성의 이점'이라는 마오의 인식이 들어가 있다. '후진성의 이점'이란 혁명에서 후진성이 오히려 유리함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인데, 마오는 중국인의 '빈곤'과 '백지'에서 후진성의 이점을 찾았다. 중국인민은 가난하기 때문에 변화와 혁명, 즉 연속혁명을 원한다. 그리고 백지의 상태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이념을 올바르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br>마오의 연속혁명론은 절대 급속한 경제발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력, 물질적인 생산력과 상응하는 사회정치적 발전단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 것인데, 경제 발전의 정도와 상관없이 사회관계, 정치형태, 사상의식과 같은 상부구조가 가능한 빨리 다음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오의 연속혁명론은 앞선 마르크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과 비교해 봤을 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세계혁명의 과정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생략된 채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인 반면에, 중국 자체 내에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결국 경제후진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선진공업국가의 사회주의 혁명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 반면에, 마오의 연속혁명론에서는 경제후진국에서도 스스로 연속혁명과정에서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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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마오의 연속혁명론은 절대 급속한 경제발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력, 물질적인 생산력과 상응하는 사회정치적 발전단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 것인데, 경제 발전의 정도와 상관없이 사회관계, 정치형태, 사상의식과 같은 상부구조가 가능한 빨리 다음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오의 연속혁명론은 앞선 [[마르크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과 비교해 봤을 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세계혁명의 과정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생략된 채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인 반면에, 중국 자체 내에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결국 경제후진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선진공업국가의 사회주의 혁명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 반면에, 마오의 연속혁명론에서는 경제후진국에서도 스스로 연속혁명과정에서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참고문헌==
 
모리스 마이스너,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1』, 김수영 역, 서울: 이산, 2004.<br>
 
모리스 마이스너,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1』, 김수영 역, 서울: 이산, 2004.<br>

2018년 6월 22일 (금) 09:16 기준 최신판

정의

1850년 마르크스가 처음으로 사용한 개념으로, 정확히는 ‘혁명의 연속성’을 뜻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의미하는 바는 시대에 따라,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

구체적 의미

마르크스의 연속혁명

연속혁명이라는 용어는 1850년 마르크스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마르크스는 독일에서의 혁명 실패를 설명하기 위해 ‘연속혁명’이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막 생겨나기 시작한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혁명에 실패하자, 독일은 부르주아지의 정치적 보수주의 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수적으로 적더라도 계속하여 자기 계급의 이익을 추구해간다면, 결국 정치적 패권을 장악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즉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이 연속된 혁명을 진행시켜 나간다면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사회주의 혁명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마르크스의 예상과 달리 독일의 혁명은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용어는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

연속혁명의 개념은 처음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배경 속에서, 1905년 이후 트로츠키에 의해 다시 정식적으로 사용되었다. 트로츠키는 혁명의 연속성을 두 가지 방면으로 설명하였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 혁명은 부르주아 민주주의에서 사회주의로 중단없이 연속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는 경제적 후진국에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수적 열세가 정치적 전투성에 의해 만회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을 사회주의로 전환시켜 갈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다른 하나는, 혁명은 하나의 국가에 국한되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어져 나간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후진국에서 일어난 혁명이 계속해서 진행되기 위해서는, 선진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연속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마오쩌둥의 연속혁명

마오쩌둥은 1958년 1월 28일 최고국무회의에서 행해진 비공개연설에서 처음으로 연속혁명의 개념을 언급하기 시작하였다. 그는 빠른 경제발전과 함께 이데올로기 혁명을 점점 더 급진적으로 계속 진행시켜야만 대중의 잠재적 생산능력을 완전히 방출시킬 수 있다고보았다. 또한 이로 인해 자본주의로의 후퇴 위험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오쩌둥은 1949년 이후로 중국의 혁명은 중단없이 이루어져 왔다고 설명하였다. 토지개혁운동을 완수하면서 부르주아 혁명단계가 사회주의로 이행되었으며, 그 다음으로는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전환되는 ‘위대한 기술혁명’인 대약진운동을 진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역사발전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경제발전 5개년계획을 이행할 필요없이 경제발전과 상부구조의 사회주의적 전환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은 인간의 올바른 혁명 의식과 강한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했다. 따라서 대약진운동 기간 동안 “사람이 결정적 요인이다”, “사람은 기계보다 더 중요하다”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웠다. 여기서 도시주민이 아닌 선진적 농민의 힘이 강조되었기 때문에, 대약진운동 시기 연속혁명은 바로 농촌혁명의 연속성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마오의 연속혁명론은 그가 갖고 있던 주의주의적 사상을 내포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주의주의적 사상이 내포한 연속혁명론은 그 기저에 '후진성의 이점'이라는 마오의 인식이 들어가 있다. '후진성의 이점'이란 혁명에서 후진성이 오히려 유리함을 가질 수 있다는 주장인데, 마오는 중국인의 '빈곤'과 '백지'에서 후진성의 이점을 찾았다. 중국인민은 가난하기 때문에 변화와 혁명, 즉 연속혁명을 원한다. 그리고 백지의 상태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의 이념을 올바르고 빠르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오의 연속혁명론은 절대 급속한 경제발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력, 물질적인 생산력과 상응하는 사회정치적 발전단계가 있다는 것을 부정한 것인데, 경제 발전의 정도와 상관없이 사회관계, 정치형태, 사상의식과 같은 상부구조가 가능한 빨리 다음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마오의 연속혁명론은 앞선 마르크스,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과 비교해 봤을 때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 세계혁명의 과정에서 부르주아 혁명이 생략된 채 사회주의 혁명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는 주장인 반면에, 중국 자체 내에서 사회주의에서 공산주의로 넘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또한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은 결국 경제후진국에서의 사회주의 혁명이 선진공업국가의 사회주의 혁명 성공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주장한 반면에, 마오의 연속혁명론에서는 경제후진국에서도 스스로 연속혁명과정에서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모리스 마이스너,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1』, 김수영 역, 서울: 이산,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