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혁명"의 두 판 사이의 차이

ChineseWiki
이동: 둘러보기, 검색
27번째 줄: 27번째 줄:
 
==개요==
 
==개요==
  
2014년 9월 27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자 시민불복종 운동이다. 2014년 8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발표한 2017년 홍콩행정장관 선거계획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반발이 그 시발점이다. 초기에는 홍콩사회 지식인 계층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후에 중, 고등학생들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여 홍콩사회의 전체적인 시위로 확대되었다. 시위 과정 속에서 홍콩 경찰들이 최루탄과 살수액으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진압하려 하였으나,
+
2014년 9월 27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자 시민 불복종 운동이다. 2014년 8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발표한 2017년 홍콩행정장관 선거계획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반발이 그 시발점이다. 초기에는 홍콩사회 지식인 계층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후에 중, 고등학생들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여 홍콩사회의 전체적인 시위로 확대되었다. 시위 과정에서 홍콩 경찰들이 최루탄과 살수액으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진압하려 하였으나,  
시민들이 지참하고 나온 우산으로 이를 막아내는 모습이 매스컴에 의해 조명되면서 '우산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
시민들이 지참하고 나온 우산으로 이를 막아내는 모습이 매스컴에 의해 조명되면서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우산혁명의 배경==
 
==우산혁명의 배경==
 +
 +
1984년 덩샤오핑은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와 홍콩 반환 문제에 관한 논의의 결과로 하나의 국가적 테두리 안에서 두 가지 체제를 인정하는 [[일국양제]]를 제안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을 기점으로 적어도 50년 동안은 본토와는 다른 별개의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것이 [[일국양제]]의 기본 골자였다. 반환 초기,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자치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자세를 취했으나 서서히 친중파를 홍콩에 심으면서 내정간섭을 시도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홍콩에 대한 내정간섭은 <홍콩 기본법 제45조>를 통해 더욱 쉬워졌는데, 이는 홍콩의 실질적인 수반인 행정장관을 선거인단을 통한 간선제를 통해 선출하는 방식으로써 친중파 인사를 심기 매우 편한 구조였다. 홍콩의 야당 세력인 '민주파'는 이러한 비민주적 간선제에 지속적으로 반발하면서 직선제를 요구하였으며, 결과적으로 2017년부터 직접선거를 통한 홍콩의 행정장관선출을 약속받았다.
 +
 +
허나 중국 공산당이 제시한 직선제는 우선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2~3명의 후보를 선정하고, 홍콩 구민은 이 2~3명의 후보들 가운데 한명을 투표로 뽑아야함으로, 비록 직선제의 탈을 썻으나 결과적으로 친중파 인사를 홍콩 구민들에게 강제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선거 방식은 홍콩의 방송국 TVB에서 개최하는 미인대회 선발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여, 이를 연관지어 중국 공산당의 조삼모사를 풍자하기도 했다.
 +
 +
 +
                                [[파일:우산혁명-3.jpg|중앙|300픽셀]]
 +
                                ''''미인대회식 직접선거,퍽이나 고맙다''''
 +
 +
 +
결과적으로 '일국양제'라는 허울 아래 중국 중앙정부의 꼭두각시가 된다는 것을 직시한 홍콩 구민들은 강하게 반발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홍콩 사회의 불안과 격정은 우산 혁명을 통해서 분출되게 된다.

2015년 10월 27일 (화) 07:40 판

중앙

중앙

날짜 2014.09.27~2014.12.15
장소 홍콩
원인 2014년 홍콩 선거 개혁
목적
  1. 진정한 보통 선거권의 보장
  2.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결정 철회
  3. 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의 사임
주요 세력
  1. 사랑과 평화의 센트럴 점령(讓愛與和平佔領中環)
  2. 홍콩 전상학생연회(香港專上學生聯會)
  3. 학민사조(學民思潮)

개요

2014년 9월 27일을 기점으로 시작된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자 시민 불복종 운동이다. 2014년 8월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가 발표한 2017년 홍콩행정장관 선거계획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반발이 그 시발점이다. 초기에는 홍콩사회 지식인 계층과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으나 후에 중, 고등학생들과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하여 홍콩사회의 전체적인 시위로 확대되었다. 시위 과정에서 홍콩 경찰들이 최루탄과 살수액으로 시위에 나선 시민들을 진압하려 하였으나, 시민들이 지참하고 나온 우산으로 이를 막아내는 모습이 매스컴에 의해 조명되면서 '우산 혁명(Umbrella Revolution)'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우산혁명의 배경

1984년 덩샤오핑은 마가렛 대처 전 영국 총리와 홍콩 반환 문제에 관한 논의의 결과로 하나의 국가적 테두리 안에서 두 가지 체제를 인정하는 일국양제를 제안한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된 1997년을 기점으로 적어도 50년 동안은 본토와는 다른 별개의 체제를 인정하겠다는 것이 일국양제의 기본 골자였다. 반환 초기, 중국 공산당은 홍콩의 자치권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는 자세를 취했으나 서서히 친중파를 홍콩에 심으면서 내정간섭을 시도하였다. 중국 공산당의 홍콩에 대한 내정간섭은 <홍콩 기본법 제45조>를 통해 더욱 쉬워졌는데, 이는 홍콩의 실질적인 수반인 행정장관을 선거인단을 통한 간선제를 통해 선출하는 방식으로써 친중파 인사를 심기 매우 편한 구조였다. 홍콩의 야당 세력인 '민주파'는 이러한 비민주적 간선제에 지속적으로 반발하면서 직선제를 요구하였으며, 결과적으로 2017년부터 직접선거를 통한 홍콩의 행정장관선출을 약속받았다.

허나 중국 공산당이 제시한 직선제는 우선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반수 이상의 지지를 얻은 2~3명의 후보를 선정하고, 홍콩 구민은 이 2~3명의 후보들 가운데 한명을 투표로 뽑아야함으로, 비록 직선제의 탈을 썻으나 결과적으로 친중파 인사를 홍콩 구민들에게 강제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었다. 이러한 선거 방식은 홍콩의 방송국 TVB에서 개최하는 미인대회 선발 방식과 상당히 유사하여, 이를 연관지어 중국 공산당의 조삼모사를 풍자하기도 했다.


                               중앙
                                '미인대회식 직접선거,퍽이나 고맙다'


결과적으로 '일국양제'라는 허울 아래 중국 중앙정부의 꼭두각시가 된다는 것을 직시한 홍콩 구민들은 강하게 반발심을 갖게 되었으며, 이러한 홍콩 사회의 불안과 격정은 우산 혁명을 통해서 분출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