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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문자의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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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문자(則天文字)는 중국 역사의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가 만들고 보급한 문자이다. 측천신자(則天新字) 또는 무후신자(武后新字)라고도 불리는 이 문자는, 당(唐) 예종(睿宗) 때인 689년 창제, 반포되었으며, 측천무후의 통치기에 사용되었다.
 
측천문자(則天文字)는 중국 역사의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가 만들고 보급한 문자이다. 측천신자(則天新字) 또는 무후신자(武后新字)라고도 불리는 이 문자는, 당(唐) 예종(睿宗) 때인 689년 창제, 반포되었으며, 측천무후의 통치기에 사용되었다.

2016년 12월 25일 (일) 03:35 판

측천문자의 정의

측천문자(則天文字)는 중국 역사의 유일한 여황제인 측천무후(則天武后, 624~705)가 만들고 보급한 문자이다. 측천신자(則天新字) 또는 무후신자(武后新字)라고도 불리는 이 문자는, 당(唐) 예종(睿宗) 때인 689년 창제, 반포되었으며, 측천무후의 통치기에 사용되었다. 측천무후는 당(唐) 고종(高宗)과 중종(中宗), 예종(睿宗)의 3대에 걸쳐 당(唐)을 실질적으로 통치하며 북주(北周) 이래의 전통적 귀족 집단의 특권을 약화시키고, 중앙집권적 관료체제를 강화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정치적 권위를 높이기 위해 연호와 관복, 관직의 명칭 등을 바꾸었으며, 689년에는 도량형과 문자를 통일한 진시황(秦始皇)의 전례에 따라 ‘조(照), 천(天), 지(地), 일(日), 월(月), 성(星), 군(君), 신(臣), 재(载), 초(初), 년(年), 정(正)’ 등의 12개의 글자를 새로운 글자로 대체하였다. 690년 당(唐)의 국호를 주(周)로 바꾸고 스스로 황위에 오른 뒤에도 ‘수(授), 중(証), 성(聖), 국(國), 인(人)’ 등의 글자를 새로운 글자로 바꾸었고, 연호도 그 가운데 두 글자를 이용한 ‘재초(载初)’로 바꾸었다. 또한 자신의 이름도 ‘조(曌)’로 바꾸었다.

측천문자의 특징

측천문자는 문자라는 이름이 붙어 있으나, 기존의 한자와 완전히 다른 문자가 아닌 한자의 제자원리에 따라 만들어진 특수한 한자라 할 수 있다. 한자의 분류인 육서(六書)에서는 상형(像型)이나 회의(會意)로 분류된다.《구당서(舊唐書)》 ‘예문지(藝文志)’에 따르면 측천무후는 새 문자를 보급하기 위해 《자해(字海)》라는 책을 편찬했다고 하지만, 오늘날 이 책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 시기에 만들어진 석각, 비첩, 불경 등을 통해 측천문자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측천문자의 종류와 숫자에서도 학자들에 따라 12개, 17개, 21개 등 다양한 해석과 주장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왼쪽의 그림처럼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측천문자의 형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 글자들을 인쇄나 기록 과정에서 나타난 변형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서로 다른 글자로 볼 것인지에 따라 문자의 숫자가 크게 달라진다.

측천문자의 제자 원리

측천문자의 제자 원리를 살펴보면, ‘신하 신(臣)’을 대신한 측천문자는 ‘충(忠)’ 위에 ‘일(一)’을 덧붙인 것으로, 신하(臣下)는 ‘충(忠)’을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측천무후의 이름인 ‘비출 조(照)’는 하늘(空) 위에 해(日)와 달(月)이 떠 있는 모양의 ‘조(曌)’로 하였는데, 세상 만물을 모두 밝게 비춘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해석된다. ‘曌’는 ‘공(空)’ 위에 ‘눈 목(目)’이 두 개 겹친 모양으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하늘(空) 위에 두 눈(目)이 떠 있는 모양으로 세상 만물을 환히 바라본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땅 지(地)’는 ‘흙 토(土)’ 위에 산수(山水)를 덧붙인 모양으로 대신하였는데, 산(山), 물(水), 흙(土)이 대지(大地)를 대표한다는 생각을 나타낸다. ‘해 일(日)’ 자의 새 을(乙)은 삼족오를 형상화한 것으로, 원래 테두리가 둥근 모양이었는데, 활자를 만들면서 테두리가 네모로 바뀌었다고 한다. ‘달 월(月)’은 口가 보름달의 윤곽을, 子가 중국 전설상의 달 토끼나 두꺼비를 의미한다. ‘별 성(星)’은 둥근 별의 모양을 나타낸 전형적인 상형자로 볼 수 있다. ‘임금 군(君)’ 자는 天, 大, 吉가 합쳐진 것으로, 후에 활자를 만들기 쉽도록 형태가 변형되었다. ‘처음 초(初)’ 자는 天, 明, 人, 上의 글자를 합친 글자로, 하늘의 광명으로 온세상을 비춘다는 의미이다. ‘나라 국(國)’은 원래 口안에 무측천을 뜻하는 武자를 넣은 모양으로 '무측천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의미였으나, 후에 或이 惑과 통하여, 불길한 글자로 간주되면서, '무측천이 옥에 갇힌 모양이라 불길하다' 하여 그 형태가 바뀌었다. ‘인(人)’은 사람은 누구나 한 생(生)만을 살 수 있다는 뜻에서 일생(一生)의 두 글자를 합쳐서 만들어졌다.

측천문자와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

측천문자는 당(唐) 시대에만 사용되었고, 오늘날에는 쓰이지 않는다. 705년 중종(中宗)이 다시 황위에 오른 뒤 모든 제도를 고종(高宗) 시대로 되돌린다고 명하여 당(唐)의 국호와 제도가 부활하였다. 837년 당 문종(文宗)이 측천문자를 폐지하고 원래의 글자로 돌아갈 것을 명하는 조서를 반포하여 측천문자의 사용은 금지되었다. 후에, 측천문자의 영향이 일부 나타나기도 했지만, 송(宋)시대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측천문자의 사용은 측천무후의 통치기인 무주(武周)시대를 중심으로 8세기~9세기 초반의 시대적 특징이다. 따라서 측천문자는 불경 등 고문서의 제작 연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기준으로 쓰이기도 한다. 측천문자가 많이 나타난다면 무주(武周) 시대에 그만큼 가깝다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66년 경주 불국사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에도 측천문자가 쓰인 것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간행 연대를 추정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인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1966년 10월 14일 경주 불국사 석가탑 해체 공사 과정 중 탑신 일부가 무너져 2층 탑신, 탑석, 상륜부가 해체되면서 그 안에서 발견된 것이다. 발견 당시 탑신 복판에는 사방 41cm, 깊이 18cm의 네모반듯한 사리공에 황산구리 동록이 슨 금동제 사리함이 안치되어 있었으며 그 둘레에는 목재ㆍ소탑ㆍ동경ㆍ비단ㆍ향목ㆍ구슬 등이 가득 차 있었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폭이 6.7cm, 길이가 6.228m, 상하괴선 행팔자로서 금동 사리함 안 서쪽 구석에 안치된 또 하나의 직사각형 금동 소사리함 안 비단보에 싸여져 있었는데, 지질은 닥종이로 된 두루마리였다. 권자본이었으며 끝에는 죽심 권축이 있었고 죽심 끝에는 붉은 주칠이 칠해져 있었다. 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제작 연대를 704~751년으로 추정하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측천문자이다. 앞서 보았듯이 측천문자는 당(唐)나라 때 측천문후가 집권했던 시기에만 주로 통용되었고 그 이후에는 자취를 감추었기 때문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는 측천문자 중 注[證] ·澍[地] ·全[授] ·葺[初] 의 4글자가 발견되었다.

참고문헌

  • 우지앙, 『측천무후』, 학고방, 2011. 5. 31.
  • 이승철,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한지』, 현암사, 2002. 6. 20.
  • 황매희, 『국가급 중국문화유산총람』, 편집부, 2010. 8. 1.
  • 則天文字, http://www.dylwhs.talktalk.net/zi/zetian.htm, 2016, 12,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