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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커시리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커커시리는 칭하이성 서남부 위수(玉樹)장족자치주에 속해 있는 국가급 자연 보호 구역이다. 이 지역의 면적은 4만 5,000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며 , 해발고도가 4,700여미터로 티베트 영양과 야크, 티베트 나귀 등 희귀동물이 사는 생태 구역으로 인간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이지만 수많은 늪이 있어서 물을 저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물은 칭하이성의 저지대로 흘러들어 중국을 대표하는 장강과 황하의 발원지가 된다. 1954년에 칭하이성의 시닝과 티베트의 라싸를 잇는 "[[칭짱공로(靑藏公路)]]"가 개통되어 이곳을 지나가지만, 도로를 벗어나서 이 구역으로 진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파일:커커시리위치.jpg|200픽셀|섬네일|왼쪽|커커시리를 지도 상에서 표시한 그림]]
 
커커시리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커커시리는 칭하이성 서남부 위수(玉樹)장족자치주에 속해 있는 국가급 자연 보호 구역이다. 이 지역의 면적은 4만 5,000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며 , 해발고도가 4,700여미터로 티베트 영양과 야크, 티베트 나귀 등 희귀동물이 사는 생태 구역으로 인간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이지만 수많은 늪이 있어서 물을 저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물은 칭하이성의 저지대로 흘러들어 중국을 대표하는 장강과 황하의 발원지가 된다. 1954년에 칭하이성의 시닝과 티베트의 라싸를 잇는 "[[칭짱공로(靑藏公路)]]"가 개통되어 이곳을 지나가지만, 도로를 벗어나서 이 구역으로 진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파일:커커시리위치.jpg|200픽셀|섬네일|왼쪽|커커시리를 지도 상에서 표시한 그림]]
  
==영화 커커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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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루추안(陆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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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커시리는 땅 위로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천지창조 이후 인간 최초의 발자국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최근 급속한 사막화의 영향으로 자고 나면 길이 없어지고 방향을 알 수 없게 되는 척박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영화 커커시리는 이곳에서 발생했던 티베트 영양 밀렵꾼들과 순찰대원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6세대 영화]]에 속한다.
 
커커시리는 땅 위로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천지창조 이후 인간 최초의 발자국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최근 급속한 사막화의 영향으로 자고 나면 길이 없어지고 방향을 알 수 없게 되는 척박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영화 커커시리는 이곳에서 발생했던 티베트 영양 밀렵꾼들과 순찰대원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6세대 영화]]에 속한다.
 
논픽션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를 줄곧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학보하려 했다. 또한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가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 영화의 서사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주요 원인이다.  
 
논픽션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를 줄곧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학보하려 했다. 또한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가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 영화의 서사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주요 원인이다.  
====실제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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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파일:졔상소난다제기념비.jpg|200픽셀|섬네일|왼쪽|杰桑素南达杰를 기리는 기념비입니다.]]
 
[[파일:졔상소난다제기념비.jpg|200픽셀|섬네일|왼쪽|杰桑素南达杰를 기리는 기념비입니다.]]
 
985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100만 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가 증가하고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밀렵이 성행해 현재는 2만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1993년부터 주변 지역의 장족과 한족들이 자율적으로 티베트 영향 보호 순찰대를 조직해 반수렵활동을 펴왔으나 밀렵꾼들과의 끊이지 않는 충돌로 순찰대장을 비롯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985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100만 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가 증가하고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밀렵이 성행해 현재는 2만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1993년부터 주변 지역의 장족과 한족들이 자율적으로 티베트 영향 보호 순찰대를 조직해 반수렵활동을 펴왔으나 밀렵꾼들과의 끊이지 않는 충돌로 순찰대장을 비롯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졔쌍 소난다졔(杰桑素南达杰)는 1994년 1월 이곳 커커시리에서 티베트 영양을 밀렵하는 밀렵꾼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다. 그는즈둬현(治多县)의 서기였는데 1992년 자발적으로 무장 보호대를 만들어 티베트 영양 보호에 앞장섰다. 이곳에는 원래 100만 마리나 되는 티베트 영양들이 살고 있었으나 밀렵꾼들 때문에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겨우 1만 마리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중국 정부의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밀렵꾼들은 모피를 얻기 위해 수많은 동물을 살해했다. 그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던 소난다졔는 무장보호대를 결성해 커커시리를 지키기로 했고, 그때부터 밀렵꾼과 무장 보호대의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졌다. 그날도 소난다졔와 그의 동료들은 밀렵꾼들을 붙잡아 거얼무로 보내고 남자들을 데리고 오다 사고가 난 것이다. 영하 40도의 날씨에 그들을 그곳에 묶어 두면 얼어 죽게 되어 트럭에 태우고 돌아오던 중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사이 밀렵꾼들이 트럭을 장악하여 그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소난다졔는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소난다졔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가 나섰고, 여론이 형성되어 마침내 1997년 커커시리는 국가급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커커시리에는 졔쌍 소난다졔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졔쌍 소난다졔(杰桑素南达杰)는 1994년 1월 이곳 커커시리에서 티베트 영양을 밀렵하는 밀렵꾼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다. 그는즈둬현(治多县)의 서기였는데 1992년 자발적으로 무장 보호대를 만들어 티베트 영양 보호에 앞장섰다. 이곳에는 원래 100만 마리나 되는 티베트 영양들이 살고 있었으나 밀렵꾼들 때문에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겨우 1만 마리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중국 정부의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밀렵꾼들은 모피를 얻기 위해 수많은 동물을 살해했다. 그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던 소난다졔는 무장보호대를 결성해 커커시리를 지키기로 했고, 그때부터 밀렵꾼과 무장 보호대의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졌다. 그날도 소난다졔와 그의 동료들은 밀렵꾼들을 붙잡아 거얼무로 보내고 남자들을 데리고 오다 사고가 난 것이다. 영하 40도의 날씨에 그들을 그곳에 묶어 두면 얼어 죽게 되어 트럭에 태우고 돌아오던 중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사이 밀렵꾼들이 트럭을 장악하여 그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소난다졔는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소난다졔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가 나섰고, 여론이 형성되어 마침내 1997년 커커시리는 국가급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커커시리에는 졔쌍 소난다졔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016년 6월 24일 (금) 07:44 판

커커시리(可可西里)

커커시리 자연보호구역(可可西里自然保护区)

커커시리는 몽골어로 "아름다운 여인"이란 뜻이다. 커커시리는 칭하이성 서남부 위수(玉樹)장족자치주에 속해 있는 국가급 자연 보호 구역이다. 이 지역의 면적은 4만 5,000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며 , 해발고도가 4,700여미터로 티베트 영양과 야크, 티베트 나귀 등 희귀동물이 사는 생태 구역으로 인간이 거의 살지 않는 곳이다.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지대이지만 수많은 늪이 있어서 물을 저장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이 물은 칭하이성의 저지대로 흘러들어 중국을 대표하는 장강과 황하의 발원지가 된다. 1954년에 칭하이성의 시닝과 티베트의 라싸를 잇는 "칭짱공로(靑藏公路)"가 개통되어 이곳을 지나가지만, 도로를 벗어나서 이 구역으로 진입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커커시리를 지도 상에서 표시한 그림

영화 커커시리

루추안(陆川)

출생 1971년 2월 8일
신장위구르자치구
사망 ?
생존시기 현대
주요 작품 사라진 총, 커커시리
관련 활동 제 25회 홍콩금상영화제 아시아영화상, 제 41회 대만 금마장 작품상, 활영상

커커시리는 땅 위로 내딛는 한 발 한 발이 천지창조 이후 인간 최초의 발자국일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은 최근 급속한 사막화의 영향으로 자고 나면 길이 없어지고 방향을 알 수 없게 되는 척박한 곳으로 변해버렸다. 영화 커커시리는 이곳에서 발생했던 티베트 영양 밀렵꾼들과 순찰대원 사이에 벌어졌던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6세대 영화에 속한다. 논픽션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 기법을 사용해 촬영하고 있다. 카메라와 인물 간의 거리를 줄곧 일정하게 유지함으로써 객관적인 시선을 학보하려 했다. 또한 인물에 대한 성격묘사가 극히 제한적이고 일반 영화의 서사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는 점은 묘한 긴장감과 불편함을 자아내는 주요 원인이다.

실화

杰桑素南达杰를 기리는 기념비입니다.

985년 이전 이 지역에서는 100만 마리 이상의 티베트 영양이 서식하고 있었지만 모피의 수가 증가하고 가격이 폭등함에 따라 밀렵이 성행해 현재는 2만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1993년부터 주변 지역의 장족과 한족들이 자율적으로 티베트 영향 보호 순찰대를 조직해 반수렵활동을 펴왔으나 밀렵꾼들과의 끊이지 않는 충돌로 순찰대장을 비롯해 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다. 졔쌍 소난다졔(杰桑素南达杰)는 1994년 1월 이곳 커커시리에서 티베트 영양을 밀렵하는 밀렵꾼들을 막기 위해 활동하다가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사람이다. 그는즈둬현(治多县)의 서기였는데 1992년 자발적으로 무장 보호대를 만들어 티베트 영양 보호에 앞장섰다. 이곳에는 원래 100만 마리나 되는 티베트 영양들이 살고 있었으나 밀렵꾼들 때문에 1990년대 들어서면서 겨우 1만 마리 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중국 정부의 관리가 미치지 못하는 것을 이용해 밀렵꾼들은 모피를 얻기 위해 수많은 동물을 살해했다. 그것을 그냥 지켜볼 수 없었던 소난다졔는 무장보호대를 결성해 커커시리를 지키기로 했고, 그때부터 밀렵꾼과 무장 보호대의 목숨을 건 싸움이 벌어졌다. 그날도 소난다졔와 그의 동료들은 밀렵꾼들을 붙잡아 거얼무로 보내고 남자들을 데리고 오다 사고가 난 것이다. 영하 40도의 날씨에 그들을 그곳에 묶어 두면 얼어 죽게 되어 트럭에 태우고 돌아오던 중 타이어에 펑크가 났다.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사이 밀렵꾼들이 트럭을 장악하여 그들과 총격전을 벌인 끝에 소난다졔는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소난다졔의 죽음이 알려지면서 중국 정부가 나섰고, 여론이 형성되어 마침내 1997년 커커시리는 국가급 자연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 커커시리에는 졔쌍 소난다졔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