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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5월 14일 (토) 22:33 (차이 | 역사) . . (+23) . . 새글 당고사건 (새 문서: ===1차 당고사건===)
- 2016년 5월 14일 (토) 22:14 (차이 | 역사) . . (+4) . . 후한 (→후한대의 호족 그리고 외척과 환관의 대립)
- 2016년 5월 14일 (토) 19:10 (차이 | 역사) . . (+762) . . 후한 (→후한의 중흥기)
- 2016년 5월 14일 (토) 18:18 (차이 | 역사) . . (+741) . . 새글 광무제 (새 문서: 광무제는 전한 경제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남양의 명문으로서 그 지역에서 활동하던 호족의 일원이었다. 따라서 후한왕조는 성립 초부터...)
- 2016년 5월 14일 (토) 16:14 (차이 | 역사) . . (+2,829) . . 새글 경학 (새 문서: 경학이란 유학의 경전과 전적에 대한 학문이다. 진시황의 분서갱유 이후 경서의 수집과정에서 금문학파와 고문학파의 구별이 생기게 되...)
- 2016년 5월 14일 (토) 14:20 (차이 | 역사) . . (-25) . . 후한 (→역사)
- 2016년 5월 14일 (토) 14:00 (차이 | 역사) . . (+903) . . 태평도 (→태평도·오두미도가 유행하게 된 배경) (최신)
- 2016년 5월 14일 (토) 13:41 (차이 | 역사) . . (+13) . . 장형
- 2016년 5월 14일 (토) 13:41 (차이 | 역사) . . (+1,717) . . 새글 장형 (새 문서: 장형(張衡, 78~139)은 천동설을 주장한 헬레니즘 최후의 대과학자 프톨레마이우스와 거의 동시기에 뤄양을 중심으로 활약했다. 장형은 《영...)
- 2016년 5월 14일 (토) 13:14 (차이 | 역사) . . (+4) . . 후한 (→과학문명의 발전)
- 2016년 5월 14일 (토) 05:09 (차이 | 역사) . . (+3) . . 신 (→신의 개혁과 실패)
- 2016년 5월 14일 (토) 05:06 (차이 | 역사) . . (+1) . . 신 (→신의 개혁과 실패)
- 2016년 5월 14일 (토) 05:03 (차이 | 역사) . . (+4) . . 신 (→왕망의 등장과 신의 설립)
- 2016년 5월 14일 (토) 05:03 (차이 | 역사) . . (-413) . . 신 (→왕망의 등장과 신의 설립)
- 2016년 5월 14일 (토) 04:52 (차이 | 역사) . . (+11) . . 신
- 2016년 5월 14일 (토) 04:49 (차이 | 역사) . . (+15) . . 신
- 2016년 5월 14일 (토) 04:49 (차이 | 역사) . . (+15) . . 후한 (→역사)
- 2016년 5월 14일 (토) 04:48 (차이 | 역사) . . (+15) . . 전한
- 2016년 5월 14일 (토) 04:45 (차이 | 역사) . . (0) . . 후한 (→=후한의 중흥기)
- 2016년 5월 14일 (토) 04:45 (차이 | 역사) . . (+27) . . 후한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