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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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6598 (토론 | 기여)님의 2016년 6월 21일 (화) 17:2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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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의 일생

당나라 말기 주조의 원주사람으로 농민반란의 지도자로, 본래 소금을 팔았는데, 책을 읽어 진사(進士) 시험에 응시했지만 낙방했다. 5살 때 시를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희종(僖宗) 건부(乾符) 2년(875) 왕선지(王仙芝)가 반란을 일으키자 그도 무리를 모아 호응했다. 5년(878) 왕선지가 전사하자 전군을 통솔하면서 스스로를 충천대장군이라 하면서 왕패로 건원했다. 중원과 강남 등 전국 각지를 전전하면서 전투를 벌였다.

그는 낙양과 동관을 함락하고 장안에 입성하여 스스로 황제에 올라 국호를 대제, 연호를 금통이라 했다. 장안을 점령할 정도로 큰 세력을 가진 황소였으나 경제적 기반이 전무했고, 장안 근교 밖에 실질적 영향이 미치지 않았다. 이후 피신한 당나라의 반격과, 부장인 주전충의 배신으로 장안에서 도망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전투에서 패하자 다음 해 태산(泰山) 낭호곡(狼虎谷)까지 쫓겼는데, 항복하지 않고 자결했다. 황소의 난은 성과를 맺지 못하고 끝났으나 당나라의 실권은 갈기갈기 찢겨 절도사들에게 넘어가게 되었다. 사실 안사의 난 이후에도 위태로이 국가를 운영하던 당나라는 황소의 난을 통해 완벽한 무능함을 보여주면서 절도사들의 군신관계를 해제시켰고, 환관의 정치와 각지의 절도사들의 난이 겹치면서 썩어가던 당나라가 직접적 멸망의 길을 걷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가 당시의 현실을 비유하면서 지었다는 두 편의 국화시가 유명하다. “스산하게 부는 가을바람 타고 뜰 가득 피었는데, 꽃술도 차고 향기도 식어 나비도 오기 어렵구나. 언젠가 내가 봄을 다스리는 신이 된다면, 복숭아꽃과 함께 같은 곳에 피게 하리라.(颯颯西風滿院裁 蕊寒香冷蝶難來 他年我若爲靑帝 報與桃花一處開)” / “기다려라 가을이 와서 중양절이 가까워지면, 내 꽃은 활짝 피고 온갖 꽃들은 다 시들리라. 하늘 가득 국화 향기가 장안을 뒤덮으리니, 성안은 온통 황금 갑옷을 두르겠네.(待到秋來九月八 我花開後百花殺 沖天香陣透長安 滿城盡帶黃金甲)”의 내용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