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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시대때 일종의 질서를 유지하던 장치였다. 패권을 쥐고 있는 제후국이 명분을 가지고 회맹을 소집하면 다른 제후국은 이 소집에 응하게 된다. 회맹을 소집하는데 나름의 명분이 있었던 만큼 초기의 회맹은 도덕적, 명분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제후국이 아닌 초가 패권을 잡은 이후로는 명분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실리가 강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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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의 권위가 떨어져 주왕 중심의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자 이를 대신한 것으로, 춘추시대때 일종의 질서를 유지하던 장치였다. 패권을 쥐고 있는 제후국이 명분을 가지고 회맹을 소집하면 다른 제후국은 이 소집에 응하고 맹약을 맺는다. 이 과정은 패자가 여러 제후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회맹을 소집하는데 나름의 명분이 있었던 만큼 초기의 회맹은 도덕적, 명분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제후국이 아닌 초가 패권을 잡은 이후로는 명분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실리가 강조되었다.

2016년 6월 21일 (화) 22:30 기준 최신판

주왕의 권위가 떨어져 주왕 중심의 봉건적 질서가 무너지자 이를 대신한 것으로, 춘추시대때 일종의 질서를 유지하던 장치였다. 패권을 쥐고 있는 제후국이 명분을 가지고 회맹을 소집하면 다른 제후국은 이 소집에 응하고 맹약을 맺는다. 이 과정은 패자가 여러 제후들에게 자신의 권위를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기도 했다. 회맹을 소집하는데 나름의 명분이 있었던 만큼 초기의 회맹은 도덕적, 명분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제후국이 아닌 초가 패권을 잡은 이후로는 명분의 중요성이 약화되고 실리가 강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