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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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과 자유당은 민주당 대통령 후보 조병옥이 신병치료차 미국으로 건너간 틈을 타서 5월 중에 실시하기로 되어 있는 정,부통령 선거를 2개월이나 앞당겨 3월 15일에 실시한다고 전격적으로 공고했다. 이승만 정권은 야당 대통령 후보가 신병치료차 해외로 나간 틈에 조기 선거를 시도하면서 능력도 인기도 없는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관권 부정선거를 획책했다.

그런데 그 조병옥 후보가 선거를 눈앞에 두고 사망하였다. 이승만 정권은 조병옥의 돌연한 사망으로 재집권이 확실시되었는데도 부통령 후보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관권동원과 물량살포 등 온갖 부정을 저질렀다.

정,부통령 선거 일정이 3월 15일로 공고되면서 자유당은 선거부정을 자행했다. 경찰과 공무원이 자유당 운동원으로 앞장서고, 반공청년단과 같은 폭력배들이 몽둥이를 들고 다녔으며, 폭력이 난무하여 야당계 인사들이 쓰러졌다.

부정선거 지령문이 폭로되었는데, 내무장관 최인규를 중심으로 공무원을 총동원하는 부정선거 계획은 '4할 사전투표, 3인조에 의한 반공개투표, 완장부대 동원으로 유권자 위협, 야당 참관인 축출, 유령유권자의 조작과 기권 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투표, 내통식 기표소 설치, 투표함 바꿔치기, 개표 때의 혼표와 환표, 득표수 조작 발표'로 요약된다.

국민들은 분노하였다. 2월 28일, 학생들이 야당의 선거유세장에 가지 못하도록 일요일 등교를 강제한 데 반발하여 대구 시내 고등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것이 기폭점이 되었다. 이 사건을 시작으로 서울,대전,수원,부산 등지로 학생시위가 확산되면서 4.19혁명의 전주가 시작되었따.

3.15부정선거가 진행되면서, 마산에서는 의분을 참지 못한 시민학생들이 일어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경찰과 검찰은 시위학생들의 호주머니에 불온문서를 투입하여 이들을 친북좌파로 몰았다.

격분한 시민학생들이 경찰관서와 변절한 국회의원 자택을 습격, 이러한 과정에서 80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하고, 행방불명이 되었던 마산상고생 김주열 군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처참한 모습으로 바다에서 떠올랐다. 마침내 온 시민이 궐기하여 경찰의 만행을 규탄하고 나섰으며, 마산 시위는 곧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4월 18일 고대생들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한 뒤 귀교 도중에 반공청년단 등 폭력배의 습격으로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4월 19일 오전 시민학생들이 일제히 궐기하여, 4.19혁명이 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