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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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hoonchang (토론 | 기여)님의 2019년 6월 11일 (화) 10:46 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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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無根蔕 飄如陌上塵

分散逐風轉 此已非常身

落地爲兄弟 何必骨肉親

得歡當作樂 斗酒聚比鄰

盛年不重來 一日難再晨

及時當勉勵 歲月不待人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어, 길 위에서 먼지처럼 날아 다니는 것.

흩어져 바람따라 굴러 다니니, 이것은 이미 무상한 몸이라.

땅 위에 태어나면 모두가 형제이니, 어찌 반드시 골육만을 따지랴?

기쁜 일이 생기면 마땅히 즐겨야 하는 것, 한 말의 술이라도 받아놓고 이웃을 모은다.

한창 때는 다시 오지 않고, 하루에 새벽은 두 번 있기는 어려운 것.

때를 놓치지 말고 마땅히 힘써야만 하는 것이니, 세월은 사람을 기다려 주지 않는다.'..

 
잡시(雜時) 中, 도연명(陶淵明)
도연명
(번체: 陶淵明, 간체: 陶渊明, 병음: Táo Yuānmíng)

출생 심양

개요 : 한시(汉诗)를 새로이 개척한 시인, 도연명

도연명은 중국의 문인 중 시대와 국가를 초월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인물이다. 그의 작품이 남긴 예술성도 뛰어나지만 그가 살아온 삶과 이상이 고상했고, 그가 추구했던 이상이 공자와 장자에 버금가는 인생의 진리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도연명은 한시의 분야 중에서 전원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돌아가자.(歸去來兮) 전원이 장차 거칠어져 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겠는가.(田園將蕪胡不歸)”라는 문구의 「귀거래사」 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감명을 남겼다. 전원시에 깊게 내재되어 있는 사상적 깊이는 오랜 시간을 거쳐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현대인들에게 거대한 파급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유가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벼슬을 그만두고 전원으로 돌아간 후에는 장자의 도가 성향을 많이 받게 되었다. 도를 추구하는 삶이 전원시에 묻어나면서 도연명의 사상이 문학으로 승화된 것이다. 때문에 도연명의 작품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퇴색되지 않고 은은한 향을 내뿜는 것이다.

어지러웠던 혼란의 시대, 그 중심에서-

도연명은 진나라와 송나라의 왕조 교체기를 보낸 인물이다. 당시는 후한 말 이래 위·촉·오의 전쟁과 위나라의 정권 쟁탈전, 정치적 혼란과 이민족의 침공, 농민들의 봉기 그리고 자연재해까지 너무나 많은 사건 · 사고들로 인해 너무도 어지러운 시대였다.

위·촉·오의 전쟁에서 조조가 위나라로 통일을 하였지만 정통성과 지배력이 약해 명문사족인 사마의에게 의지를 하였다. 이로 인해 사마의 가문은 권력을 얻게 되고 점점 위나라의 권력을 장악하여 조조 가문을 몰아내고 위나라의 왕조를 무너뜨리며 진나라를 세웠다.

그러나 사마씨 가문이 민생과 정치를 외면하고 주색에 빠져 나라의 기강이 흔들리자 중원이 흉노족에게 점령당하면서 국가가 몰락했다. 이에 다시 국가를 세운 것이 동진이었다. 그러나 동진의 시기에도 반란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농민 봉기가 계속되었다. 반란을 진압한 유유의 세력이 새롭게 집권하여 세운 나라가 바로 송나라이다. 도연명은 동진에서 송나라로 넘어가는 이러한 혼란의 시대를 보낸 것이다.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국가는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였으며 빈번한 전쟁과 가뭄과 홍수 등 자연재해로 인해 민생은 극도로 피폐해졌다. 특히 덕을 갖춘 황제가 없어서 힘들어하는 백성들에 대한 박해와 수탈이 심각했고 민중들은 봉기를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도연명은 능력보다는 문벌을 중시하는 당시 사회를 보고 몇 차례 벼슬길에 오르긴 했지만 ‘곧은 성격 때문에 혼탁한 세상과 뒤섞일 수 없다’며 전원으로 물러나 글을 남기게 된 것이다. 글에 담긴 도연명의 고뇌는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던 지식인들에게는 지혜의 지침이 되었고, 상처받은 민중들의 마음에는 단비 같은 위로가 되었다.

도연명의 문학에 담긴 고상한 품격

국교로서의 유가가 무너지고 도가가 유행하면서 당시의 지식인들이 의지할 이념적 가치는 소실된 상태였다. 사회와 명분을 중시하는 유가사상에 대한 회의감이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무위자연과 물아일체를 추구하는 노자와 장자의 사상이 급속도로 퍼졌고, 사마씨 세력의 혹독한 통치를 날카롭게 비판하게 되었다.

그러나 도연명은 시대 풍조를 비판적으로 수용하기는 했으나 당시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추구했던 신선의 존재를 믿지는 않았다. 노동을 중요시했고 근면을 강조하면서 자신을 엄격히 통제함으로써 방탕함을 절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인간이 인간성을 잃어가는 시대에서도 자신의 도리를 지키며 수양된 인격과 합리적 사고를 지켜냈고, 현실과 자신의 조화를 이루며 당시의 혼란을 극복한 성인(聖人)의 모델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오늘날, 도연명에게 길을 묻다

도연명이 추구한 이상향은 그의 산문인 『도화원기』를 통해 신비하게 그려졌다. 도와원기의 내용은 이러하다. 한 어부가 길을 읽고 복숭아나무 숲에 들어섰는데 그 끝을 가보니 아름다운 자연, 비옥한 땅, 가지런한 논밭이 펼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된 마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어부를 융숭히 대접했고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당부했으나 어부는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시 그 마을을 찾았지만 끝내 길을 찾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그 마을을 찾으려는 선비 하나가 있었지만 그 또한 길을 찾지 못했고 오래지 않아 병으로 죽으면서 아무도 길을 묻는 이가 없게 되었다.

이 작품은 서양의 유토피아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 유토피아는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설정이 되어 있는 반면, 도화원기의 이상향은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는 작은 마을 같은 곳으로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의 영향으로 실제 중국에는 ‘무릉’과 ‘도원’이라는 실제 지명이 붙게 되었고,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식 속에는 이상향이 그리 멀지 않고 실존하는 어느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였다.

도연명의 메시지는 급격한 발전으로 또 다른 혼란을 겪고 있는 전 세계의 현대인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준다. 우리가 꿈꾸는 이상향은 과연 실존하는 곳인가? 화려하고 거창하진 않지만 어딘가에 있을 소박한 곳이 우리가 찾던 이상향은 아닐까? 실존 가능하다면 이상향을 찾는 것보다 이상향을 만드는 것이 더 의미 있는 행동이진 않을까? 궁극적으로 인간이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일까? 우리는 작품을 통해 듣게 된 도연명의 질문에 곰곰 생각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도연명, 참된 삶의 가치를 추구한 예술가

도연명은 100여 편의 시와 10여 편의 산문 정도만을 남겨놓았지만, 중국 문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전원시라는 분야를 개척한 것도 대한단 의미를 가지지만, 소박함 속의 강한 생명력을, 강인하면서도 부드러운 정신력을 문학적으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는 것이다.

자신의 작품처럼 실제로 고결하고 청렴한 삶을 살았던 위인으로서, 도연명은 자신의 작품과 삶을 통해 후세에게 참된 삶의 이치를 가르쳐주고 있다. 그의 지조를 본받은 문인들의 작품이 이어지고, 한국과 일본을 넘어 서양에 이르기까지 세속적이지 않은 도연명의 청렴함은 역사에 남아 후세에게 길이길이 보전되는 것이다.

참고문헌

- 도서, 『도연명의 사상과 문학』, 김창환, 을유문화사, 2009.

- 도서, 『도연명 전집』, 도연명, 문학과지성사,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