二百五小传
감독 | 郑小秋 |
배우 | 吕玉昆, 陈正薇, 罗静宜, 强明, 朱琳 |
상영연도 | 1949 |
제작 | 大同电影企业公司 |
베이핑(北平)의 중학생 위안원광(袁文光)은 경극을 좋아하는데, 종종 연극을 보고 밤늦게 담을 넘어 학교로 돌아오는 바람에 학칙을 어겼고, 결국 제적당하여 경극반에 들어가 기예를 배웠다. 또 반의 봉건적 규칙에 반항했다가 쫓겨난 후, 늙은 악공(老伶工) 황위에러우(黄月楼) 밑으로 들어가 위안사오러우(袁少楼)로 개명하였다. 1년 후, 사오러우는 극단에서 관외 공연을 하고, 반의 여배우(花旦) 류옌윈(柳艳云)과 우의를 맺었다. "9.18사변"으로 동북지방이 일제의 침탈을 당하자 현지 경무국장 정룽(郑荣)은 권세를 등에 업고 옌윈(艳云)을 첩으로 삼으려 하였다. 사오러우는 정룽이 매국노짓을 하는 것을 증오하며 <법문사(法门寺)> 공연 중에 정룽을 풍자하다가 정룽의 지시로 헌경에 체포돼 고문을 당한다. 옌윈은 사오러우를 구하기 위해 정룽에게 사정하다가 정룽에게 모욕을 당한다. 사오러우는 출소한 후 베이핑으로 돌아와 옛 연극 개혁에 종사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옌운이 베이핑에 왔지만 적군 및 괴뢰 세력이 날로 성행하여 옛 연극이 좌절을 겪자, 사오러우와 함께 상해로 가서 다시 공연하였다. 환경이 열악하고 생활이 어려워 옌윈은 어쩔 수 없이 물감 장사꾼에게 시집을 갔다. 사오러우는 깊은 자극을 받았는데 불행히도 목소리가 변해버려 연극 편집인으로 업을 바꾸었다. 8.13 항일전쟁이 발발하자, 옌윈은 가족의 속박에서 벗어나 사오러우과 함께 내륙으로 가서 구국을 위해 순회공연을 하였다. 이후 옌윈의 어머니가 병에 걸려 두 사람은 상하이로 돌아갔다. 극장 사장은 옌윈이 <따피관(大劈棺)>과 같은 음란한 연극에 참여해 관중을 모으라고 요구한다. 사오러우는 대책을 생각해 내어 <신 따피관(新大劈棺)>을 창작해, 음란한 내용을 빼고 스스로 바보 역할(二百五)을 연기하여 관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때 매국노 황 모 씨가 적에게 아첨하는 각본을 짜서 극장에 공연을 강요하자, 옌윈은 병을 핑계삼아 공연을 거절하였다. 3층에서 공연을 관람하던 사오러우는 적에게 아첨하는 연극에 격노해 구호를 외치는 등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는데, 결국 일본 헌병에게 총살당하고 만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4%BA%8C%E7%99%BE%E4%BA%94%E5%B0%8F%E4%BC%A0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qMyMlVBQG0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