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征北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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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영화

감독 成荫、汤晓丹
배우 陈戈、汤化达、冯喆、刘沛然、张瑞芳、铁牛、项堃
상영연도 1952
제작 上海电影制片厂

영화는 해방 전쟁 초기, 화둥(华东) 전장에서 인민해방군이 적과 강자가 아군의 약세 속에서 마오쩌둥 기동전의 전략 사상을 운용하여 적을 섬멸하고 승리를 거두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해방 전쟁 시기, 화둥 야전군은 산둥 지역에서 적과 여러 차례의 격전을 거쳐 장제스군의 산둥 해방구에 대한 중점 공격을 철저히 분쇄했다. 1947년 겨울, 국민당 반동파가 우세한 장비와 병력을 집결시켜 화둥 해방구에 집중 공격을 가했고, 중국 인민해방군 화둥부대는 쑤위(粟裕) 장군의 지휘 아래, 소련에서 7전 7승을 거뒀다. 적을 더욱 강력하게 섬멸하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적 고려를 위해 대보 후퇴를 단행하였다. 이 움직임에 대해 처음에는 일부 병사들이 선뜻 납득하지 못했다. 모 사단 1개 대대 가오 대대장(高營長)이 이끄는 부대는 산둥성 이멍(沂蒙)산간지대의 타오촌(桃村)으로 이동해 대기하고 있었고, 인민군대의 후퇴에 대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많았다. 병사들과 고향사람들의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가오 대대장과 자오위민(赵玉敏) 촌장은 각각 상부의 작전 의도를 전달하고 설명했다. 이때 갑자기 상황이 바뀌자 반동파 군대는 해방군이 패퇴한 줄 알고 30만 명의 군마를 모아 3면에서 해방군을 포위하여 해방군과 결전을 꾀하였다. 해방군은 타오촌 앞의 다사허(大沙河)에서 적을 저지하고 6일 밤낮으로 전투를 벌인 뒤 봉황산으로 이동해 봉황산을 포위하고, 이미 해방군에게 포위된 적군 리 군단장(李军长) 예하의 7개 사단을 포위 섬멸했다. 가오 대대장은 증원하러 온 적군 장 군단장의 부대를 마천령(摩天岭)에서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봉황산 전투가 끝난 후, 가오 대대장은 다시 포위하여 섬멸한 원군의 최전선을 맡으라는 명령을 받고, 적군이 다사허 남쪽 기슭으로 후퇴하여 완강히 저항하자, 가오 대대장은 오솔길을 가로질러 다사허를 건너 퇴로를 차단하고, 이후 적군은 다사허 상류의 댐을 폭파하여 홍수로 아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막으려 하였다. 자오위민은 유격대를 이끌고 댐의 폭약 도화선을 끊어 댐을 보전하고 하류 인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켜 적의 모략을 무력화시켰다. 해방군은 다사허를 건너 완강한 적을 섬멸했고, 적측의 장 군단장과 참모장은 모두 꼼짝없이 체포되었다.


출처

https://baike.baidu.com/item/%E5%8D%97%E5%BE%81%E5%8C%97%E6%88%98/8436703?fr=aladdin
영상 링크: https://www.youtube.com/watch?v=fuRPXY_ayQ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