明清停滞:大陆孤立主义的后果 - 대륙 고립주의의 결과
목차
머릿말
영국의 경제학자인 앵거스 마디슨Angus Maddison가 연구를 통해 밝혀낸 바에 따르면, 500여년이 넘게 이어졌던 명청 두 제국은 장기간의 침체가 이어졌던 암흑의 시기였다. 1300년부터 1800년에 이르는 500년 동안, 중국의 평균 GDP 증가율은 '0'이었다. 이 500여년의 시간동안 중국을 제외한 세상은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르네상스를 통해 유럽은 암흑의 중세시기를 지나왔고 연이어 '대항해시대'를 열었다. 이후 산업혁명이 폭발적으로 일어났고 삼권분립이 탄생하며 현대 국가들의 주요 특징으로 자리잡았다. 외부세계는 속도를 내며 10배 100배로 앞을 향해 미치듯이 달리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 속의 토끼처럼 500년이란 시간동안 하나의 고목이 되어 깊은 잠을 자고 있었다.
중국과 유럽의 평균 gdp비교
서기 1년 960년 1300년 1700년 중국 450 450 600 600 유럽 550 422 576 924
(앵거스 마디슨 제작, 단위는 국제 위안화 (1990년의 달러 구매력을 참고하여 만든 화폐 계산 단위)
1840년대까지 문을 닫고 잠을 자던 중국은 총과 대포에 의해 강제로 닫힌 문을 열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도 중국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게 패배한 뒤에야 비로소 기지개를 폈다. 전쟁으로 뼈아픈 패배를 겪고 나서야 일어난 셈이다. 때문에 이 시기의 중국은 현재의 중국으로서도 깊이 반성을 해야 하는 시간이다.
왜 명청 시기의 통치자들은 국가의 문을 닫아버리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큰 이유중에 하나는, 새로운 제도에 대한 두려움이다. 송나라 말, 왕안석이 실행한 변법의 실패는 체제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화의 동력과 용기를 철저히 소멸시켰고 이후의 남송은 중원을 잃어버리고 조그마한 영토에서 백여년을 조금 넘게 버티다 사라졌다. 송나라를 대신해 중원을 점령한 몽고인들은 98년이라는 한 세기의 시간동안 철혈통치로 대륙을 지배하였고 한족의 마음속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었다. 앞으로 나아가거나 무언가를 확장하는 도전적인 행위는 감히 다시 시도할 수 없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안정의 추구가 모든 것을 압도하여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버린 셈稳定压倒一切"이다. 황련우(黄仁宇)는 "애초부터 태조 주원장 주요 목표는 명의 건국과 한(一) 정치 체제의 영원한 유지였을 뿐, 경제 발전에는 관심이 없었다…… 명나라 사람들의 관심주제는 중국이 세계의 중심으로 인식이 되어있든 말든 농업 국가의 특징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상업의 발전이나 대회 무역 등은 관심 밖의 문제였다." 라고 명청시기를 평한다. 명나라는 1억에 이르는 인구덕에 내수 시장이 충분하였으므로 영토 확장이나 외부 인구의 유입이 필요 없었다. 동시에 떠로은 '안전'에 대한 욕구는 명나라의 영토를 세계로부터 떼어놓으며 고립 시켰다. 중국 대륙과 세계 각국간의 교류는 이 시기 급격히 줄었다.
때문에 이후 500년의 과정은 "안정이 그 어느 것 보다 최우선 가치가 되어버려 모든 것을 다 붕괴시켜버린" 과정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