林家铺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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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영화

감독 水华
배우 谢添,林彬,于蓝,蔡元元
상영연도 1959
제작 北京电影制片厂

줄거리

1931년, 일본의 중국 침략은 전 국민의 큰 분노를 불러일으켰고, 각지에서 젊은 학생들이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벌였다. 이 바람은 저장성 항자호(浙江杭嘉湖) 지역의 작은 마을에도 영향을 미다. 린자(林家) 가게 주인의 딸 린밍슈(林明秀)는 일본제 치파오를 입었다는 이유로 학우들의 질시를 받았다. 이때 현지 국민당 당사는 상회의 위 회장을 통해 일본 제품을 검사한다는 명목으로 상점을 찾아다니며 협박했다. 그날 밤, 린 사장은 400위안을 위 회장에게 뇌물로 주었고, 일본 제품 판매에 대한 묵인을 받았다. 일제품은 '국산품'으로 린자(林家) 가게에서 판매되었다. 상하이 사변(一二八事变)이 터지자 상하이의 모 상회의 수금원이 린 사장에게 빚을 독촉하러 오자 린 사장이사채업자에게 도움을 청했다. 시국이 불안해지자 대출은커녕 연말 전에 묵은 빚을 갚으라고 했다. 다행히 가게의 점원 수생(寿生)이 시골에서 수금하고 돌아와서는, 린 사장이 반반씩 갚는 방법으로 상하이의 수금원을 떠나보냈다. 세밑이 지난 후, 상하이에서 온 난민들에게 일용 잡화를 팔기 위해 린 사장은 소매점에 가서 빚을 받아 물건을 가져오고, '1위안 한 벌'의 방법으로 고객을 유치했다. 한창 번창할 때, 국민당 당사는 핑계를 대고 린 사장을 잡았고, 경찰서의 푸 국장도 린밍슈를 강제로 부인으로 삼으려고 한다. 린씨네 집안은 어찌할 바를 몰라 수생은 몇 백 위안을 써서야 린 사장을 되찾았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린 사장은 서둘러 딸을 수생에게 시집보낸 뒤 싹쓸이해 딸을 데리고 조용히 빠져나갔다. 린씨네 가게가 도산했다. 권세 있는 채권자들이 소식을 듣고 린씨네 가게의 물건을 가져가려고 몰려들지만, 장 과부, 주삼태 같은 노약하고 힘없는 채권자들은 경찰이 린씨네 가게의 문밖을 막아섰고, 그들의 피땀 어린 돈은 헛되이 린 사장에게 사기당했다. 붐비는 인파 속에서, 장 과부의 아이가 밟혀 죽자, 그녀는 완전히 미쳤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pUA0NAqXz7U&t=292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