祝英台
《梁山伯与祝英台》的传说 -《양산백과축영대》전설
东晋时期,浙江上虞县祝家庄,玉水河边,有个祝员外之女英台,美丽聪颖,自幼随兄习诗文,慕班昭、蔡文姬的才学,恨家无良师,一心想往杭州访师求学。祝员外拒绝了
女儿的请求,祝英台求学心切,伪装卖卜者,对祝员外说:"按卦而断,还是让令爱出门的好。
東晉 시기에 浙江省 上虞县에는 축씨 집성촌이 있었는데, 옥처럼 투명하고 맑은 물가에 는 축원외랑(祝英台의 아버지)의 딸 祝英台가 살고 있었다.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했으며, 어릴 때부터 오빠를 따라서 시문을 배웠다. 祝英台는 班昭와 蔡文姬의 학식과 재주를 사모하였는데, 집안에는 좋은 스승이 없어 이를 유감스러워했으며, 진심으로 杭州에 가서 좋은 스승을 찾아 공부를 하고 싶어 하였다. 축원외랑은 딸의 요구를 거절하였지만 祝英台는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나도 절실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祝英台는 점쟁이로 가장하여 아버지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점괘에는 따님이 집을 떠나 멀리 가는 것이 좋다고나오는군요.”
祝父见女儿乔扮男装,一无破绽,为了不忍使她失望,只得勉强应允。英台女扮男装,远去杭州求学。途中,邂逅了赴杭求学的会稽(今绍兴)书生梁山伯,一见如故,相读甚欢,在草桥亭上撮土为香,义结金兰。
祝英台의 아버지는 여자인 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게 남장을 한 딸을 보고 차마 딸을 실망시킬 수가 없어서 마지못해 그녀의 부탁을 승낙하게 되었다. 그렇게 祝英台는 남장을 하고서 杭州로 공부를 하러 먼 길을 떠났다. 杭州로 가는 도중에 우연히 같은 곳으로 공부
를 하러 가는 会稽(지금의 绍兴) 출신 梁山伯을 만나게 되었는데, 두 사람은 첫 대면에서 옛 친구처럼 친해졌다. 梁山伯과 祝英台는 함께 공부하게 되었다는 것이 너무 기쁜 나머지 草桥亭에서 한 줌의 흙을 모아 향을 피워 의형제를 맺었다.
不一日,二人来到杭州城的万松书院,拜师入学。从此,同窗共读,形影不离。梁祝同学三年,情深似海。英台深爱山伯,但山伯却始终不知她是女子,只念兄弟之情,并没有特别的感受。
하루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杭州의 만송서원에 도착하여 스승에게 절을 올리고 서원에 나란히 입학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동창이 되어 함께 공부를 했으며, 대단히 사이가 좋아 늘 붙어 다녔다. 梁山伯과 祝英台는 함께 3년을 공부하면서 바다같이 깊은 정
이 들었다. 두 사람은 깊이 사랑하게 되었지만 梁山伯은 줄곧 그녀가 여자인지 알아채지 못한 채 祝英台를 향한 마음은 단지 형제 사이의 정이라고 여겨 특별한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였다.
祝父思女,催归甚急,英台只得仓促回乡。梁祝分手,依依不舍。传说梁祝十八相送到长桥饯别,在长桥上来来回回走了十八里路。在十八里相送途中,英台不断借物抚意,暗示爱情。 山伯忠厚纯朴,不解其故。
祝英台의 아버지는 딸이 그리워져서 그녀에게 돌아오라고 재촉하였고, 이를 전해들은 祝英台는 어쩔 수 없이 고향으로 황급히 돌아가게 되었다. 梁山伯과 祝英台는 헤어져야 했지만 차마 서로를 떠나보내지 못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梁山伯과 祝英台가 长桥에서
“18 번의 이별”을 하게 되었을 때 이 다리 위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18리를 걸었다고 한다. 이렇게 18리를 걷는 와중에 祝英台는 끊임없이 사물에 빗대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면서 梁山伯을 향한 자신의 애정을 넌지시 알렸지만 梁山伯은 본래 성품이 온화하고 순진하여 그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英台无奈,谎称家中九妹,品貌与己酷似,愿替山伯作媒,可是梁山伯家贫,未能如期而至,待山伯去祝家求婚时,岂知祝父已将英台许配给家住贸阝城(今鄞县)的太守之子马文才。美满姻缘,已成沧影。二人楼台相会,泪眼相向,凄然而别。
祝英台는 어쩔 수 없이 집안의 아홉 번째 여동생이 자기와 용모가 닮았다고 거짓말을 하고서 梁山伯을 대신하여 중매를 서겠다고 말하였다. 하지만 梁山伯은 집안이 가난하여 제 시간에 도착하지 못하였다. 梁山伯이 祝英台의 집에 가서 구혼을 하려고 했을 때 祝英
台의 아버지가 이미 그녀를 贸阝城(지금의 鄞县)에 사는 태수의 아들 马文才에게 시집을 보내려 한 것을 어찌 알았겠는가? 아름다운 부부의 인연은 이미 흐릿한 그림자가 되어버렸다. 이후 두 사람은 누각에서 만나 눈물 어린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가슴 아픈 이별을하게 되었다.
临别时,立下誓言:生不能同衾,死也要同穴!后梁山伯被朝廷沼为鄞县(今鄞州区)令。然山伯忧郁成疾,不久身亡。遗命葬贸阝城九龙墟。英台闻山伯噩耗,誓以身殉。英台被迫出嫁时,绕道去梁山伯墓前祭奠,在祝英台哀恸感应下,风雨雷电大作,坟墓爆裂,英台翩然跃入坟中,墓复合拢,风停雨霁,彩虹高悬,梁祝化为蝴蝶,在人间蹁跹飞舞。
두 사람이 이별하게 되었을 때 함께 맹세하였다. ‘살아서는 같은 이불을 덮을 수 없었으니, 죽어서라도 같은 공간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이후 梁山伯은 황제의 명으로 鄞县(지금의 鄞州区)의 현령이 되었다. 하지만 梁山伯은 祝英台와 이별하게 된 것을 슬퍼하여 병을 얻게 되었으며, 오래되지 않아 죽게 되었다. 梁山伯은 죽기 전에 贸阝城의 九龙마을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다. 祝英台는 梁山伯의 부음을 듣고서 梁山伯을 따라 죽겠다고 맹세하였다. 祝英台는 집안의 강요에 의해 시집가던 날, 길을 우회하여 양산백의 묘로 가서 그를 추모하였다. 祝英台가 梁山伯의 묘 앞에서 그의 죽음을 비통해하고 있을 때 갑자기 비바람이 치고 천둥과 번개가 크게 일자 梁山伯의 묘가 갑자기 벌어졌고, 祝英台는 재빨리 무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무덤이 다시 닫히자 바람이 멈추고 비가 그쳤으며, 무지개가 하늘 높이 떠올랐다. 그렇게 梁山伯과 祝英台는 한 쌍의 나비가 되어 인간세상을 휘돌아 춤을 추듯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