脣亡齒寒
순망치한은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희공 5년에 나오는 말이다.
춘추시대 말엽(B.C. 655) 진(晉)나라 헌공은 괵나라를 공격할 야심을 품고 통과국인 우나라 우공에게 그곳을 지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괵나라는 주 무왕이 숙부인 괵중에게 내린 제후국이다. 주 무왕이 상나라 주왕을 토벌한 후 공이 있는 자들을 제후로 임명한 것이다.
우나라의 현인 궁지기(宮之寄)는 헌공의 속셈을 알고 우왕에게 간언했다.
"괵나라와 우나라는 한몸이나 다름없는 사이오라 괵나라가 망하면 우나라도 망할 것이옵니다. 옛 속담에도 수레의 짐받이 판자와 수레는 서로 의지하고(輔車相依),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脣亡齒寒)고 했습니다. 이는 바로 괵나라와 우나라의 관계를 말한 것입니다. 결코 길을 빌려주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나 뇌물에 눈이 어두워진 우왕은 '진과 우리는 동종(同宗)의 나라인데 어찌 우리를 해칠 리가 있겠소'라며 듣지 않았다.
궁지기는 후환이 두려워 '우리나라는 올 해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가족과 함께 우나라를 떠났다.
진나라는 궁지기의 예견대로 12월에 괵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오는 길에 우나라도 정복하고 우왕을 사로잡았다.
이때부터 입술과 이의 관계처럼 결코 끊어서는 안 되는 관계를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