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語源

손수레 련.png

금문에서 輦(련) 글자는, 두 사람이 수레를 끄는 모양이고, 기본적으로 사람이 수레를 끄는 의미이다. 진나라, 한나라 이후 제왕이나 황후가 타는 수레를 특별히 지칭하는데, 그 예로 帝辇(황제의 어가), 凤辇(황후의 어가) 등의 글자가 있다.

文化

<輦(련) - 사람이 끄는 수레>

고대에는 말이 아닌 사람이 통치자의 수레를 끌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손수레’와 ‘황제의 수레’라는 두 가지 뜻을 가진 ‘연’자는 바로 두 사람이 짝을 이뤄 손수레를 끄는 모습을 보여준다. 근대에 이르러 도시의 평지에서는 ‘릭샤(rickshaws)’라는 것이 사용됐다. 이는 바퀴를 두 개 단 일종의 경형 인력거로, 한 사람이 끌면서 달리도록 고안된 것이다. 중국어로는 ‘사람의 힘으로 가는 수레’라 하여 ‘인력거(人力車)’라고 한다. ‘릭샤’는 이 세 글자의 남방 발음을 모사한 것이다.

대다수의 중국인에게 있어 인력거는 다른 교통수단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과거에 그들은 여행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았다. 고대 중원 지역의 사람들은 농경사회로서 정착 생활을 주로 했고, 정착을 하면서부터 문명과 문자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반면 북방 유목민족들은 가축들을 키우기 위해 푸른 목초지를 찾아 자주 이동하고 돌아다니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중원 지역의 농경사회에 유목사회가 동화되기 시작했고 정착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들이 어떤 곳으로 가야 할 때는 도보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수레가 매우 중요한 기능을 했다. 홍콩 여행객에겐 쿨리 (coolie)가 끌어주는 수레를 타고 유람하는 일이 큰 즐거움일 것이다. 인력거는 아시아의 많은 지역, 예컨대 오래된 식민도시인 캘커타 등에서 매우 보편적으로 이용되며, 중산층에게는 택시 같은 것으로, 중국의 삼륜차와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1] 19세기 후반, ‘서태후’라고도 불린 중국의 여걸, ‘자희 태후’ 역시 인력거를 탔었고 지금도 그 유물이 남아있다.

語源

가마 련.png

금문의 련(輦)자는 두 사람이 수레를 끄는 모양이다. 그 본 의미는 사람이 끄는 수레이고, 진한 시기 이후에는 제왕 혹은 황후가 타는 수레를 가리켰는데 예를 들면 帝辇(황제의 마차), 凤辇(황후의 마차)등이다.

[辇下]: 황제의 마차 앞, 수도

[辇毂]: 황제의 마차, 황제, 수도

文化

<가마의 종류>

가마의 종류에는 輦, 덩, 초헌, 남녀 등이 있다.

연: 임금이 거둥할 때 타고 다니던 가마이다. 옥개에 붉은 칠을 하고 황금으로 장식했으며, 둥근 기둥 네 개로 작은 집을 지어 올려놓고 사방에 붉은 난간을 달았다.

덩: 공주나 옹주가 타던 가마

초헌(軺軒): 조선 시대에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타던 가마이다. 긴 줏대에 외바퀴가 밑으로 달리고, 앉는 데는 의자 비슷하게 되어 있으며, 두 개은 긴 채가 달려있다.

남여(藍輿): 의자와 비슷하고 뚜껑이 없는 작은 가마이다. 승지나 참의 이상의 벼슬아치가 탔다.

  1. 세실리아 링크비스트, “한자왕국”, 청년사, 2002, pp.144-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