鹵
語源
상형자이다. 금문에서부터 등장하는데, 소금을 정제하는 모습을 그려, 안쪽의 ※는 소금의 원재료를, 바깥쪽은 포대를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1]
文化
설문해자에서는 로(鹵)를 두고 “서(西)의 생략된 모습을 그렸고, 중간의 ※는 소금을 그렸다.” 라고 했는데 서(西)가 새의 둥지처럼 얽은 대광주리를 지칭함을 고려한다면, 이는 소금 호수나 웅덩이에서 퍼낸 소금물을 대광주리에 담아 불순물을 제거하고, 다시 불에 끓여 만들어 내는 중국 전통의 소금 제조 방법을 염두에 둔 해석이라 생각된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그 당시 이미 안정(安定)(지금의 감숙성에 있는 지명)이라는 곳에 소금을 생산하는 곳이 있었고, 산서성 서남부의 중(中)조(條)산(山) 북쪽 기슭에는 길이 51리, 넓이 7리, 둘레 1백 61리에 이르는 유명한 소금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2]
햇볕에 말려진 호수 소금이 주머니에 담긴 모습이다. 로의 금문은 한 보따리의 아주 작은 물건을 형상한 것으로 가치 있는 작은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옛 사람들은 가공하지 않은 소금을 채취한 후 바로 보따리에 넣어 돌아갔다. 전서체의 형태는 획순을 조정한 결과물이다. 로는 짠 맛의 물건을 의미하기도 한다. 소금은 해염, 호염(호수), 석염, 정염(우물) 등이 있다. 중국 고대의 산동 일대에서는 해염, 호염을 생산했는데, 생산지는 현대의 산서 운성시의 염지였다. 그 시기에는 卤 혹은 盐卤라고 불렀다. <사기>에는 “산동은 해염을 먹고, 산서는 염로를 먹는다.”고 기재되어 있다. 전국시기 때 정염은 주로 사천에서 생산되었다. 卤의 본래 의미는 햇볕에 건조된 호수 소금을 주머니에 담은 것(포장)이며, 짠 맛의 가공되지 않은 소금을 뜻하는 것 외에도 물건 자루를 말하기도 한다, <한서>에서는 “말, 소, 양 만 여 마리를 卤获하다.”고 적혀있는데, 여기서 卤获는 掳获 노획의 뜻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