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습
북위는 호나라 복장의 영향을 받아 일반 여성들이 소매가 좁고 몸에 붙는 짧은 저고리를 즐겨 입어 복장은 '위는 끼고 아래는 풍성한' 스타일이었다. 남북조라는 두 종류의 풍조가 서로 영향을 주고 융합되어 고습(袴褶)복장이 유행했다. 고습은 호복의 일종으로 한대 중원에 유입되기 시작했다.
동한 말년이 되면 바지는 이미 몸에 딱 붙고 좁은 긴 바지에서 바지통이 매우 넓은 '통이 큰 바지'로 바뀌어 상류사회에서 유행했다. 남북조 시기 폭이 넓은 바지와 같이 맞추어 입는 상의를 '습褶'이라고 부르고 이 두 종류의 의상을 '고습'이라 했다.
일반적인 고습을 기초로 관원들의 조복은 바지의 아랫단 폴을 넓게 하고 저고리의 소매통을 넓게 하여 당시 유행하던 넓은 소매에 넉넉한 저고리와 비슷해졌다. 북조는 편리를 도모하기 위하여 오른쪽 여밈을 왼쪽 여밈으로 바꾸었다. 고습을 입은 사람이라면 일반적으로 모두 허리에 가죽 허리띠 매기를 좋아했고 여유 있는 사람들은 금은을 조각하고 주옥을 박아 장식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고습의 특징은 품이 넉넉하고 편안하면서도 또한 반드시 띠로 묶기 때문에 헐렁하고 끌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으며 입으면 몸이 호리호리하면서 풍채가 뛰어나 보였다. 또 남녀가 같이 입을 수 있어 광범위하게 유행되었으며 당시의 심미적 취향을 일정 정도 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