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힐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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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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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힐강(1893~1980)은 중국의 역사학자이자 민속학자이다. 본명은 송곤(诵坤)이며, 호가 힐강(颉刚), 자는 견(坚)이고, 필명은 여의(余毅)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었다. 전통문화를 의심하고 우상 타파에 힘쓴 의고파의 중심인물이었다.

생애

1893년 5월 8일 장쑤성의 쑤저우시에서 태어났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조부모에게서 글자 공부를 배워, 6~7세에 이미 간단한 고서와 창본소설(唱本小说)[1]을 읽을 수 있었다.
고힐강이 7살 때(1900년) 어머니가 병환으로 돌아가시게 되었다. 1906년 자신의 지방에 처음으로 고등소학교(長元吳 公立 高等小學校)가 새로 생겨 1등으로 합격하게 되었다. 이후 세상이 돌아가는 흐름을 하나의 원리로 파악하고 싶어 베이징대학 철학과에 다니다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1910년 첫번째 부인인 오정란(吳徵蘭)과 결혼하였지만 폐병에 걸려 오정란은 1918년에 사망한다. 1919년 은이안(殷履安)과 재혼한다.1920년 베이징대학을 졸업하고 베이징대학 조교, 샤먼대학, 옌징대학 교수 등 교단에서 활동하였다. 1927년 이후로 1942년까지 7권으로 구성된 역사서 《고사변》(古史辨)을 발표하였다. 중일전쟁 중에는 민중계몽에 주력했다. 1980년 12월 25일 87세의 나이로 베이징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관

그의 학문관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의고변위(疑古辨僞)로, 옛 것을 판단하고 가짜를 판별해야 함을 제창했다. 그는 기존의 중국의 고서를 모두 의심하여 직접 확인하고 검증해볼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중국 역사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삼황오제(三皇五帝)신화에 대해 의심하여 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고힐강은 역사 속에서 믿을 수 없는 부분을 제거하기 위해 4가지 전통 관념을 타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 모든 민족이 하나에서 비롯되었다는 일원적 생각.
둘째, 모든 지역이 원래부터 통일 되어 있었다는 생각.
셋째 신화를 모두 인격화시키려는 생각.
넷째, 고대가 모두 황금시대였다는 생각.

이를 통해 역사를 의고(疑古) 즉 고서와 고대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그것에 대한 비판적인 검토를 해야함을 주장하였다.

평가

20세기 초 고힐강의 주장은 굉장히 과감한 주장으로 학계에서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지만 이후 시간이 흘러 학자들은 점차 사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비판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저서

  • 고사변《古史辨》
  • 한조학술사략《汉代学术史略》
  • 양한주제고《两汉州制考》
  • 정초전《郑樵传》
  • 삼황고《三皇考》
  • 중국강역연혁사《中国疆域沿革史》
  • 중국역사지도《中国历史地图》

참고문헌

고힐강 저, 김병준 옮김. 『고사변 자서』, 소명출판, 2006.

  1. 큰 소리를 내어 읽는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