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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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대에는 과거 고시와 임관 등용이 별도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고시를 상서성의 이부에서 주관하였는데 현종 때에 예부로 이관되었으며, 조정에서 파견한 주관자를 ‘지공거(知貢擧)’라고 했고 시험은 일반적으로 매년 한 차례 실시되었다. 상과 중에서도 수재과는 특히 어려워서 천거나 응시자가 적었기 때문에 초기에 시행되었다가 오래 지나지 않아 폐지되었다. 명법·명서·명산은 기술 과목에 속하며 임관 중 승진도 용이하지 않아 선비들이 중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명경·진사가 가장 인기가 많았다. 명경과는 유가경전의 암송을 중시하여 시험 치는 것으로 1경, 2경, 3경 등으로 나누어 응시자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였고, 진사과는 고종 이전에는 단지 시무책(時務策, 정치 논문)을 시험하였으나 후에는 점차 시부 잡문과 경전도 시험하였으므로 고시의 내용이 명경에 비하여 매우 어려웠다. 무측천 이후에는 전국적으로 문사를 숭상하여 진사과가 특별히 중시되었는데, 많은 고급 관리들이 대부분 진사과 고시 출신이었다.

명경·진사 등의 과거 고시에 합격한 사람들은 이부에서 행하는 전서(銓敍) 고시에 합격해야 비로소 정식으로 관직을 받을 수 있었다. 과거 고시를 통과한 것은 관리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춘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이부의 시험은 행동거지, 언행, 서법, 공문 판사 등을 보는데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고 했다. 네 가지 관문을 모두 통과해야만 드디어 관복을 입을 수 있었다. 만일 이부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이듬해의 재시를 기다려야 했으며 바로 관리가 될 수는 없었다.

참고 문헌

<<중국통사>>, 범문란, 우종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