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로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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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거리의 천사>라고도 한다. 마로천사(馬路天使)는 1937년 위안무즈(袁牧之, 1909~1978)가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영화이다. 자오단, 저우쉬엔, 웨이허링, 자오회이션 등이 출연했으며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한 것으로 코미디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감독인 위안무즈는 1938년 옌안영화단의 결성을 주도하게 된다. 배우인 자오단(趙丹, 1915∼1980)과 웨이허링(魏鶴齡, 1907∼1979)은 이 시기를 대표하던 남자 배우들이었다. 위안무즈(袁牧之)가 시나리오 작업과 감독을 맡은 영화 <거리의 천사>는“중국영화계의 특별한 꽃”이라고 불렸다. <거리의 천사>는 순수한 서민소재의 영화이다. 중국 1930년대 대도시 하층시민의 생활을 그대로 재현하였으며 도시빈민의 실업과 가난, 굴욕적인 생활을 묘사하여 그들의 비참한 삶을 초래한 사회문제를 심각하게 밝혔다. 이 영화는 단순히 하층민의 생활을 재현한 것이 아니라 창작자의 현실에 대한 깊은 사고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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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1930년대 상하이를 배경으로 여주인공인 샤오홍과 샤오윈 자매는 유곽에서 주인 부부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는 상태이다. 아직 어린 샤오홍은 요청하는 손님에게 노래를 부르고 언니인 샤오윈은 유곽에서 매춘을 한다. 이런 샤오홍의 연인인 샤오천은 악단에서 트럼펫을 부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의 절친한 친구인 라오왕은 신문파는 사람이다. 샤오홍의 건너편에 살고 있는 샤오천은 창문을 사이로 두고 서로를 특정한 소리로 호출하며 노래를 부르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 사랑을 나눈다. 하지만 샤오홍의 언니인 샤오윈은 공교롭게도 샤오천을 사랑하는 상태이며 이런 샤오윈을 좋아하는 사람은 라오왕이다. 어느날 어린 샤오홍에게 늙고 부유한 남자가 눈독을 들이며 샤오홍에게 옷감을 사주자 이를 본 샤오천이 분노해 둘의 관계는 갈등에 휩싸이게 된다. 이후 유곽의 주인 부부에게서 샤오홍을 사들이려는 늙고 부유한 남자의 의도를 알게 되자 샤오홍 자매는 방법을 강구하게 된다. 이내 샤오윈의 권유로 샤오홍과 샤오천은 함께 도망을 가게 되고 이를 계기로 둘의 갈등이 해결된다. 샤오홍이 샤오천과 행복하게 살고 있을 무렵, 샤오윈의 뒤를 밟아 이들을 추적한 주인에게로부터 샤오홍을 지키려다 언니인 샤오윈은 칼에 찔리고 결국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시대적 상황

1930년대의 상하이

1893년 상하이 거류 민회 개항 50주년 기념식에 즈음하여 상하이 조계는 이미 모든 공공 설비에 당시 서구 과학 기술의 수준이 담겨 있었다. 당시 외국 민회들은 상하이를‘서양 생활 및 과학 기술과 동등한 수준’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그러면서 1930․40년대에 유럽의 대도시를 개조하면서 뒤따랐던 부정적 사회 현상이 상하이에서도 속출하였다. 그래서 쓰레기 청소, 유행 질병 소멸, 매음 억제 등은 상하이, 런던, 파리가 직면한 동일한 골칫거리였다. 동시에 청조 당국의 관할에서 벗어난 중국인들은 외국인들의 쾌적한 생활을 동경하면서 서양 사람에 대한 편견을 줄여가며 이질 문명 간의 대화 가능성을 열어간다. 이런 정황에서 라오상하이 엘리트들의 현대화와 민족중흥에 대한 중첩된 갈망은 개량운동과 1911년 신해혁명으로 분출되었다.
청조가 막을 내리고 1912년 중화민국이 성립되지만 중국은 다시 군벌 혼전의 국면으로 접어든다. 1907년 러시아 10월 혁명의 성공은 921년 7월 23일 상하이 프랑스 租界에서 중국공산당 창당을 이끌어 낸다. 19세기 말, 이미 초기 자본주의의 싹이 움텄던 라오상하이에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꿈꾸는 정당이 결성되었던 것이다. 비록 정치 정당으로서 공산당의 출범은 그 형세가 미미하였지만 상하이는 잠시나마 이데올로기의 해방구로서 대립되는 이념적 요인이 공존하는 공간이 된다. 미완의 봉건 잔재인 군벌의 혼전, 근대 국가로서 중화민국의 성립, 새로운 구망의 대안으로서 공산당 창당 등의 역사적 변화는 상하이 조계의 문화 공간에서 결정적 변화요인으로 작동되지는 않았다. 관료자본주의로 경제의 틀이 잡히면서 상하이는 노동자 계층이 조직되고 공산당의 활동과 연계하여 1925년 상하이 남경로의 시위에서 13명이 영국 순경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전국적인 반제反帝 운동으로 확산된다.(5․30운동) 이때까지만해도 상하이는 1924년 국공합작의 실천적 결실이 이루어진 듯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다. 북벌전쟁(1926년~1927년)의 승리로 군벌 시대는 종결되지만 1927년 장개석의 반공정변(4/12)으로 국민당과 공산당의 이념적 갈등은 더욱 거세진다. 자국의 영토 안에 외국인이 거주하고 그런 시공간에서 민족 전쟁을 치루고, 다시 공산당에 대한 정치적 탄압이 자행되던 공간 환경에서 상하이는 다양한 역사문화적 요소가 뒤섞여서 풍요로운 근대 도시 문화를 꽃 피운다. 1927년 4월 18일 남경을 수도로 국민정부가 수립되지만, 남경 정부에서는 공산당 수뇌부를 지명수배하고, 왕정위의 무한 국민정부는 공산당과의 결별을 공식적으로 선언한다. 이런 정치 형세에서 1934년 말부터 공산당은 대장정을 시작하고 상하이 공산당원은 더욱 고립 분산된다. 1931년 9월 18일 일본군이 동북을 침공하고, 이듬해 1월 28일 상하이 閘北 華界를 침공한다. 일본군은 제국주의 침략의 고삐를 다그쳐 1935년에는 북방의 여러 개 성을 침략하고, 1937년 7월 7일에는 중일전쟁이 전면전으로 확산된다.
이런 상황에서 1930년대 이전에 상하이의 영화붐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한 것은 할리우드 영화였다. 중국영화로는 전통희곡과 탐정모험물, 코미디물, 윤리설교 류의 대중적인 오락작품이 상연되었으나 큰 반향을 얻지는 못하였다. 이러한 외국영화가 주도한 상하이에서 이뤄진 영화 관람 형태는 1930년대 들어 변화의 조짐을 보인다. 이는 1930년 설립된 롄화영화사(聯華影業公司)가 ‘국산영화 부흥(復興國片)’ 슬로건을 내걸고 제작한 국산영화의 흥행 성공이 밑거름이 되었다. 그리고 1931년 일본의 1.28 상하이 침공 이후 상하이에 애국주의 정서가 미만하자 기존의 거대영화사였던 스타영화사(明星影業公司)가 좌익작가를 극작가로 영입하면서 이러한 경향은 강화된다. 이 두 영화사를 중심으로 제작된 영화들은 할리우드 영화와 오락물 일색의 중국 관객의 관람 형태를 바꿔놓기 시작하며 영화 내역에 좌익적인 색채를 부여한다.


작품 창작의 배경

영화 <거리의 천사>의 소재는 대도시 생활에서 기원한다. 위안무즈, 정쥔리(鄭君里), 니얼, 자오단(趙丹), 웨이허링(魏鶴齡) 등은 상하이의 성모원길(聖母院路)이라는 작은 술집에서 자주 술을 마셨다. 그들은 그곳에서 예술창작에 대해 토론하고, 사회저층에서 생활하는 대중과 접촉하기도 하면서 대중의 비참한 운명에 대한 창작의욕에 대해 토로하기도 했다. <거리의 천사>의 주인공을 연기한 자오단은 “이 술집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삯품 파는 사람, 목이 쉬어버린 신문 판매원, 가녀, 삼류기녀 등이다. 모두가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하등인(下等人)’이다. 우리는 당시 사회에 대한 불만과 ‘하등인에 대한 동정심’으로 그들을 표현하고자 <거리의 천사>를 창작했다.”고 말했다. <거리의 천사>를 창작하는 과정에서 위안무즈는 상하이의 바시엔교(八仙橋)와 대세계 부근 그리고 스마거리(四馬路) 일대의 기생집, 찻집, 대중목욕탕, 이발소를 두루 다니며 인물관찰과 생활체험을 했다. 영화 속 기녀, 가수, 취고수, 신문판매원, 실업자, 이발사, 소매상인 등을 사회 하층계급의 비참한 운명을 묘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체험으로 그려낸 인물들을 통해 시대의 암흑을 날카롭게 비난하였다. 환경을 진실 되게 표현하기 위해 골목, 술집, 거리, 목욕탕, 다락방 등은 모두 실제 운영하고 있는 곳을 선택하여 촬영을 하였다. 복잡한 도로, 좁은 골목, 시끄러운 이발소, 낮은 다락방, 낡은 신문지가 붙어 있는 목재 벽과 마주한 옥상 창문 등이 <거리의 천사>만이 가진 독특한 배경을 만들어내었다. 이러한 배경은 소인물의 생활배경과 신분, 생활방식, 성격, 비극적인 운명을 더욱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영화는 주제부터 배경, 인물까지 모두 창작자의 실제 목격과 현실을 기초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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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이 영화에 대해 권위 있는 중국영화사는 “민족 영화의 經典作品”으로 “충만한 啓蒙精神과 救亡意識”을 담고 있으며, 동시에 “민족에 대한 관심, 계급적 대비, 시대적 특징과 사회적 이슈가 깊이 슬며들어 있는 新生의 영화작품”의 계열이란 평가를 주고 있다. <마로천사>는 즐거움과 격정, 동정의 필치로 1930년대 중국 도시 하층민중의 고난 생활을 재현하였다. 하층민의 선량함을 찬미하였고 돈밖에 모르는 부자들을 혹독히 비난하였다. <마로천사>는 하층민의 진실한 생활을 재현하여 사회의 암흑면을 폭로하고자 하는 목적을 달성했다. 프랑스의 유명한 영화학자 죠르쥬 사둘(Georges Sadoul)은 영화 <마로천사>를 이렇게 평가했다.“위안무즈의 <거리의 천사>를 본 사람이 이 영화가 1937년에 프랑스영화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젊은 중국감독이 제작한 영화임을 모른다면 쟝 르느와누(Jean Renoir) 혹은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착각할 것이다. 이 영화의 품격은매우 독특하고 전형적인 ‘중국식(中國式)’이다.”


마로천사의 연출

카메라 기법

<마로천사>가 1930년대 말기에 촬영하였기에 촬영수법이 비교적 뛰어난 편이었다. 때문에 영화의 리얼리즘 주제가 다른 영화에 비해 선명하게 표현되었다. 시청각적 예술 면에서 <마로천사>는 1930년대 유성영화 중 ‘집대성자(集大成者)’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카메라의 이동과몽타쥬의 사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영화의 시작장면이 고층빌딩의 정상에서 어두컴컴한 지하층으로 이동하는 롱테이크(Long take)를 사용하여 대비 효과를 주어 이야기의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였다. 감독은 장면의 연결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장면을 표현했다. 장면을 내재적 연관이 있는 장면으로 연결하였고 다른 장면으로 이동하는 동시에 단일 화면의 독특한 내용의 표현도 중시하였다. 예를 들어, 라오왕과 샤오전이 살고 있는 방 목재 벽에 붙어있는 신문지가 원래는 배경이나 감독은 목재 벽을 클로즈업하여 의도적으로 눈에 띄는 뉴스표제와 인물연기, 대화 장면과 연결하여 신문에 있는 기사를 돌출하였다. 예를 들어, ‘국난위기(國難當頭)’, ‘도주범 체포령(緝拿逃犯)’, ‘백은수출(白銀出口)’ 등의 뉴스표제로 사회의 불안정한 정세를 표현하였다. 이러한 독특한 몽타쥬 장면은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고 심각하게 사고를 하도록 유도하여 영화의 리얼리즘 주제를 교묘하게 표현하였다. 시끄러운 시장, 이발관 등의 배경은 1930년대 중국의 반봉건·반식민지 사회배경을 재현하였고 경제 불황, 실업과 빈곤 등의 현실을 반영하였을 뿐만 아니라 기록성이라는 예술효과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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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음악

<마로천사>는 대화, 노래, 음향효과, 배경음악 등 유성영화의 4대 요소를 완벽하게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소리와 영상이 서로 조화롭게 보완되면서 각기 그 장점을 살리고 있는 30년대의 우수한 영화다. 배경음악 <사계절의 노래(四季歌)>는 장면과 조합되어 고향을 적에게 빼앗긴 동북지역 민중들이 타향에서 떠돌아다니는 고통과 비애를 완곡하게 표현하였다. 영화에서 샤오홍이 <사계절의 노래>를 두 번 부른다. 샤오전과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유쾌한 리듬으로 불렀고 쌍방의 원한과 고통을 표현하기 위해 어두운 곡조로 <사계절의 노래>를 불렀다. 상황에 따라 노래의 리듬과 반주가 바뀌어 샤오홍의 심리활동을 정확히 제시하였다. 이는 인물 성격 묘사와 줄거리 발전 추진 면에서 중요한 예술 수법이 되었다.“배경음악은 모두 15-16곳으로 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등장하고 있는데, 중요한 두 곳은 ①영화 시작할 때의 결혼 악곡과 ②놀러나가는 샤오천⋅샤오홍⋅라오왕을 샤오윈이 뒷골목에서 만났을 때의 배경음악이라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여러 가지 점에서 이 두 곳의 배경음악은 영화의 구체적인 줄거리와 잘 부합되는 느낌과 정서를 해학적일 뿐만 아니라 사실주의적인 풍격으로 처리하고 있다.

풍자

<마로 천사>의 디제시스(diegesis)적 시간은 1935년 가을이다. 영화는 카메라가 1934년 영국 상인이 지은 당시 18층의 최고층 현대식 마천루인 바이라오후이百老汇(Broadway의 음역) 빌딩을 모방한 세트의 최고층부에서 아래층으로 점차 내려가 컴컴한 지하 지층을 비추며 시작된다. 반대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카메라가 지하 지층으로부터 점차 올라가 이 마천루의 최상층을 비추며 끝을 맺는다. 이러한 수미상관(首尾相關)의 미학은 이 영화의 내러티브 전략의 하나로 어떠한 설명이나 이야기보다도 함축적으로 앞으로 관객들에게 펼쳐질 영화의 내용에 대해 혹은 펼쳐졌던 내용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다. 백색의 현대적 마천루의 모습은 앞으로 등장하게 될 우매하고 곤궁에 처한 도시 하층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위용을 자랑하며 당당하게 서 있다. 이 백색의 마천루는 겉으로는 화려하지만 속으로는(밑으로는) 실의와 좌절에 빠진 수많은 하층민들의 삶을 짓밟고 있는 국제적 도시 상하이의 상징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마천루의‘천당天堂’적 이미지는 영화 속에서도 해학이 넘치는 풍자로 표현되고 있다.
영화에서는 샤오홍小紅의 위급한 상황을 안 샤오천小陳과 라오왕老王이 소송을 걸기 위해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간 장면이 나오고 있는데, 이 호화로운 변호사 사무실이 다름 아닌 마천루의 고층에 있었다. 최신식 보일러를 사용한 증기⋅온수 난방시설을 접해보지 못한 두 사람이 변호사를 만나기 위해 입고 온 단벌의 나팔수 군복과 그의 기사로 위장하기 위해 입은 동복은 호사스런 현대식 사무실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관객들에게 웃음과 황당무계함을 자아내게 한다. 이 장면에서 변호사가 풍자의 대상이라면, 샤오천과 라오왕은 해학적으로 표현되어 관객들의 동정심을 유발시키고 있다.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해 볼 점은 이 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은 누구인가 하는 점이다. 당시 상하이 영화관들의 입장료가 싸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영화의 주인공들인 하층민이라기보다는 넓은 의미에서 중산층 이상일 것으로 생각된다. 중산층 사람들이 하층 세계에 대한 애정보다는 상류 계층에 대한 환상적 동경 속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이 영화의 진보적 주제는 관객들의 만족감을 충족시키기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이 점을 고려하여 위안무즈 감독이 사용한 것이 동일시를 위한 수단, 즉 영화적 내러티브이다. 카메라가 마천루의 상층부로부터 점차 내려가 지하 지층을 비추면서 관객도 컴컴한 지하 지층으로 빠져든다. 이 과정에서 관객은 영화와 현실을 동일시하게 되고, 이 지하 지층은 현실 세계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 사용된다. 샤오윈小雲의 죽음으로 영화가 비극적으로 끝나면서 카메라는 다시 지하 지층에서 빠져나와 최상층에 머문다. 관객은 이제 영화와 현실을 동일시하는 메커니즘으로부터 벗어나 우뚝 서 있는 백색의 현대식 마천루를 다시 마주하고 있다. 관객은 영화 속에서 투사된 마천루의 이미지 즉 더러운 돈으로 쌓아올린 환상일 뿐만 아니라 결코 감추지 못하고 언젠가는 드러날 그 냉정함과 흉악함과 추악함을 상기하며 자리를 뜰 것이다.

캐릭터 기법

이 영화의 내러티브 전략으로 눈여겨 볼 또 하나의 특징이 캐릭터이다. 다시 말해서 대사, 외모, 행동이라는 요소에 의해 캐릭터들이 어떻게 묘사되며 특히 다른 캐릭터와의 상관관계 속에서 어떠한 성격과 특징이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와 앵글, 색채, 배경 또한 캐릭터를 묘사하는 주된 요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1935년 가을 상하이 하층민 농탕弄堂의 스쿠먼石库门 건축은 인간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공간이다. 이곳에서 삶의 터전을 이룬 나팔수, 찻집의 가수, 매춘부, 신문팔이, 과일장수, 이발소의 점원, 실업자 등의 직업은 상하이가 만든 근대사회의 하층민이자 아웃사이더들로서, 근대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노동 소외의 알레고리allegory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서 가장 먼저 서구적 근대화를 경험한 상하이란 도시에는 문명화의 풍요로움과 편리함보다는 그 이면에 광기와 죄악이 난무하고 있음을 이들 하층민들의 삶에 빗대어 폭로하고자 한다. 순박하고 정이 많아 오히려 핍박을 받는 도시 하층민들의 이미지는 그 자체로 개항과 자본주의적 사고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저항의 기호이자 좌익적 프로파간다인 셈이다. 영화는 30년대 상하이란 시공간을 반식민지와 반봉건적인 암흑 상태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러하기에 위안무즈 감독은 인간에 대한 착취와 탐욕이 난무하는 이 시공간을 희망보다는 절망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사랑보다는 아픔이 넘쳐나는 곳으로 그리고 있다. 더 나아가 이 비극성은 샤오윈의 죽음으로 극대화되고 거기서 상영은 끝난다. 영화가 비극의 절정에 종영된다는 사실은 가난하고 좌절된 하층민의 삶의 역사가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는 것이기에 이 영화가 더욱 진보적 색채를 띠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근대적 여성의 선택

<마로천사>는 매춘부로 일하는 언니와 노래를 부르며 사는 여동생이 등장한다. 여동생은 주인의 관리 아래에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술집에서 손님들의 시중을 들며 노래를 불러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한 단골손님이 여동생에게 깊은 관심을 가지자 건너편에 사는 트럼펫을 부는 남자와 도망가려고 한다. 그러나 쉽게 도망갈 수 없는 동생을 보호하려다가 언니 샤오윈이 칼에 찔려 죽게 된다. 수동적인 상품개념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동생의 의지와 그것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언니의 희생은 가부장으로서 대신하는 숭고한 선택이며, 무서운 남자들로부터 숨거나 연약한 여성이 아닌 그들에게 맞서고 칼을 던지는 등 강인한 저항의지를 통해, 부재하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여성성을 넘어 가부장의 책임의식 속에 발현된 근대적 여성의 선택이다.


또 다른 시선

이렇게 사회주의적 가치관을 드러내는 당시 상하이의 영화는 좌익영화로 분류된다. 좌익영화는 5.4 운동의 사상을 계승했다고 추앙되며 높은 평가를 받는데, 반면 피코위츠(Pickowicz)는 1930년대 중국 영화가 5․4 운동의 급진적인 사상을 계승했다는 중국 영화사의 주류적인 해석에 반대한다.그는 1930년대 중국 영화의 기본적인 정치적인 경향은 급진주의라기보다 개량주의였으며, 이때 ‘멜로드라마’라는 형식이 급진주의를 표현하는데 제약으로 작용했다고 판단한다. 좌익 영화인들은 ‘멜로드라마’라는 형식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으며 이것이 5․4 사상의 복잡성을 드러낼 수 없는 것으로 영화의 운명을 정해버렸다고 주장한다. 좌익영화는 ‘멜로드라마와 초급 맑시즘의 결혼’이었으되 멜로드라마적인 동인이 더 크게 작용했으며 이에 따라 5․4 지식인은 영화를 개조하기보다 이에 의해 보수화되어가고 동화되어갔다. 그에 따라서 “좌익 영화인은 스스로‘멜로 드라마’ 형식을 빌어서 맑스주의를 선전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실제로 맑스주의의 실질적인 내용은 이미 이 형식에 함몰되었고 천편일률적인 방식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좌익영화의 멜로드라마적 요소를 지적한 것은 비단 피코위츠만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좌익 영화 중에서는 할리우드 영화를 각색한 작품이거나 혹은 유사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작품도 존재한다. 그러나 좌익 영화의 멜로드라마적인 요소가 어떻게 작용했는지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논의한 예는 드물었다. 피코위츠는 좌익영화에 내포된 ‘멜로드라마’적인 구성을 부상시켜 이로써 좌익영화의 좌익 이념성을 해제시키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중화되었다는 주장을 전개한다. 그런데 피코위츠의 논의대로 멜로드라마적 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좌익 영화의 이념성에 흠집이 나는 것이 아니라, 좌익영화에 개재된 멜로드라마는 그 자체로서 좀더 복잡한 문제를 소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피코위츠의 논의는 좌익영화에 두드러졌으되 그간 논의되지 않았던 멜로드라마성에 과감하게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때 사용된 ‘멜로 드라마’ 개념은 불변의 자연적 장르적 개념에 더 가까워 보인다. 그의 논의에서는 1930년대 중국-상하이라는 역사적이고 지정학적인 사회정치적 배경 속에서 이 장르가 새롭게 배분되고 배치될 가능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 보인다. 그리하여 좌익영화에서 멜로드라마성은 좌익 이데올로기적인 경향과 ‘배치’되는 요소로서만 기능하는 것으로 설명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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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류예, 「1930년대 상하이 영화의 리얼리즘 소재 연구」, 2015
  • 이호현, 「근대 속 상해영화: 1930년대 좌익영화를 중심으로」, 사총 Vol.66, 2008
  • 박자영, 「좌익영화의 멜로드라마 정치―1930년대 상하이 대중문화 형질」, 中國現代文學 Vol.33, 2005
  • 한달호, 「근대적 역사를 기억하는 1930년대 중국 상해 영화 연구 -<거리의 천사(馬路天使)>(1937)와 <교차로(十字街頭)>(1937)를 중심으로」, 성균관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