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목차
'민족' 의 개념
민족의 어원
1. 민족은 서양의 'nation' 또는 'volk'를 번역한 것이다. 'nation'은 혈통, 출생을 의미하는 라틴어 natio에서 나온 것이다. 이는 혈연관계를 중시하는 혈연 집단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volk'는 민중, 민족, 국민, 인민 등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독일어였다. 한편 이 두 단어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의미가 다소 변했다. 프랑스의 'nation'은 주로 이념을 공유하는 정치적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였고, 독일의 'volk'는 언어, 역사 등을 같이하는 문화적 공동체의 성격이 강하였다. 한편 이러한 개념은 훗날 일본을 통해 한국과 중국에 들어왔다. 일본에서도 초반에는 'nation'과 'volk'를 각각 국민과 족민으로 번역하여 사용하였다. 허나 이후 'nation'에 기반한 민족이란 단어를 더 자주 사용하고, '민족'이란 단어는 'nation'의 번역어로 자리잡게 된다.
'nation' 의 개념에서의 민족
에르네스트 르낭
우리는 일반적으로 민족을 종족, 언어, 종교, 지리 등 다수의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것을 이용하여 정의하려 한다. 하지만 에르네스트 르낭은 이러한 일반적인 견해를 반박한다. 그는 이러한 예를 든다. 프랑스의 경우 일부는 켈트족, 일부는 이베리아족이며 또한 게르만족 역시 다수 섞여 있다.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영국, 스페인계 아메리카와 스페인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하나의 민족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의 예로만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우리나라만 봐도 무종교, 불교, 개신교, 천주교, 무속신앙 등 다양한 종교가 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르낭은 민족을 자발적 의지에 의한 위대한 결속체라고 본다. 즉, 민족은 스스로 그 속에 스스로가 지나온 과거의 전통을 안고 있고, 현실적이고도 분명한 행동을 통해 날로 새로워 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민족이란 과거의 개개인이 한 행동이나 업적들이 , 시간을 지나면서 한층 다져지고, 영웅화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위대한 인물들, 영광스러운, 영웅적인 과거, 이러한 것에 대해 현대의 개인들이 헌신적 감정을 가지고 만들어 나가는 결속체라는 것이다.
'volk' 의 개념에서의 민족
독일 계통의 학자들
'volk'의 개념을 빌려 민족을 정의한 학자들은 주로 독일 계통의 학자들이다. 이들은 종족, 조상, 종교, 언어, 공통의 문화, 영토, 관습 등 공통의 역사적, 사회적 가치를 소유한 원초적인 유대 관꼐를 강조하는 '종족적 형태'로 보았다. 당연히 여기에는 유전적 요소, 세습적 유산이 강조된다. 이는 위에 설명했던 에르네스트 르낭을 필두로 하는 'nation'의 개념에서의 민족과는 확연히 대비된다. 이들은 뚜렷한 공통의 징표가 없다고 주장한 반면 이들 독일 계통의 학자들은 인종, 언어 등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지표를 가지고 민족을 구분했다.
'민족 형성'
20세기 중반까지 서구 학계에서 '민족'의 형성에 대한 의견 역시 민족의 어원처럼 나누어진다. 크게 나누어 보면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도구론적 입장, 또 다른 하나는 원초론적 입장이다.
도구론적 입장
도구론적 입장은 민족이 형성되는 원인을 구성원이 스스로를 민족공동체에 기꺼이 귀속시키고자 하는 주관적 의지로 보는 입장이다. 도구론적 민족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민족이라는 개념과 존재가 존재하기 그 이전에, 인민주권을 바탕으로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그 이후에 민족주의가 나타났다는 입장인 것이다. 이들이 근거로 삼고 가장 중요시 하는 역사적 계기는 바로 '프랑스 대혁명'이다.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 불평등한 신분관계에 있을 때 프랑스 국민들은 그들이 같은 민족이라는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혁명을 일으키고 난 후, 각각의 인민이 주권을 가진다는 개념이 들어서고 난 후에야 같은 민족이란 개념이 생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이러한 인민주권인식이 생긴 근대 이후에나 민족이란 개념이 형성되었다고 보기때문에 민족 형성 시기를 근대 형성 이후로 본다.
원초론적 입장
민족 형성에 대해 원초론적 입장을 취하는 이들은 '문화민족'이라는 개념을 받아들인다. 즉, 언어, 공통의 문화유산, 종교, 관습등 객관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기준을 기준으로 민족을 판단한다. 따라서 국가 생성 이전부터 민족이란 것은 객관적으로 존재했으며, 공통의 역사적 가치와 사회적 유대에 기초를 둔 실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민족적 유대감은 국가나 정치 형태에 관계없이 존재하며, 민족주의라는 것도 이러한 원초적 유대감이 왕조적 충성심을 거쳐 양적으로 성장한 것에 불과한 것이라고 본다. 당연히 이들은 근대 이전부터 역사적으로 민족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이들은 '원초적 기반' 내에서 공유되는 '문화적 기반'을 강조하는 이론이다. 공통의 친족, 조상, 혹은 그들의 신앙이나 집단에서 같은 종교,언어 습속등 문화적 특징을 가진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의 '민족'
조선시대 족류, 동포
1907년 이전의 민족
한국에서 국민이란 단어는 갑오개혁 때 등장한 바 있다. 갑오 개혁때는 인민을 국가 의식을 가진 근대적인 국민으로 만드려고 했으나 갑오개혁은 결국 실패하였고, 이후 대한제국에서는 '신민'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였다. 국민이 주권을 가지는 '국민'이라는 단어보다는 국왕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신민'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사용하였다.
1907년 이후의 민족
중국의 량치차오가 지은 음빙실문집에 실린 '민족'의 영향을 받아 한국에서도 본격적으로 '민족'이란 단어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때 '민족'은 다음의 8가지의 특징을 가진다.
1) 처음에 한곳에 모여 살았으며 2) 처음부터 혈통이 같고 3) 그 지체와 형상이 같고 4) 그 언어가 같고 5) 그 문자가 같고 6) 그 종교가 같고 7) 그 풍속이 같고 8) 그 생계가 같은 것
여기서 알 수 있는건 량치차오의 '민족'은 지리, 혈통, 형질, 언어, 문자, 종교, 풍속, 경제 생활의 공통성을 지닌 집단인 것이다. 이는 앞서 언급했던 원초주의의 관점과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