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북취재단 사건
리영희는 1989년 1월 12일 일본으로 건너가서 친분이 있던 야스에 료스케를 만났다. 리영희는 북한 주요 인사에게 소개장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리영희는 야스에를 통해 방북하여 김일성과 인터뷰도 하고, 가능한 북한의 여러 분야를 취재하고자 했다. 분단 반세기 동안 남한의 언론인이 한 번도 들어가지 못한 금단의 장막을 넘어보려는 야심찬 기획이었다.
야스에는 리영희에게 구체적인 취재 의도와 계획을 서면으로 써 줄 것을 부탁했고, 귀국한 리영희는 1월 17일 한글과 일본어로 각각 두 통을 준비하여 야스에에게 보냈다.
4월 14일 새벽 공안합동수사본부는 리영희의 집을 수색하여 문건을 압수하였고, 리영희를 전격 구속했다. 당국은 그 문건의 "존경하는 김일성 주석 각하"라는 대목을 문제 삼았다. 면담을 허락받으려는 상황에서 상대의 감정을 해치지 않도록 북한이 쓰는 공식적인 의전용어를 쓰는 게 당연하다고 리영희는 생각했던 것인데, 이 대목을 수사당국은 물고 늘어졌다.
공안합동수사본부는 리영희가 <한겨레> 취재단의 방북취재를 성사시키기 위해 정부와 사전협의 없이 친북 인사인 야스에에게 편지를 보내는 행이 등이 반국가단체의 수괴를 찬양‧고무하고 반국가단체 지역으로 탈출을 예비음모하였으므로 국가보안법 제6조 5항에 저촉된다고 몰아세웠다.
그의 구속과 관련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한국기자협회‧학술단체협의회‧전민련 등 140여 단체가 항의 성명을 내고,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이 곳곳에서 전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