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사찰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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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동쪽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후, 통치자의 주도하에 불사가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동진 100여 년간 건축된 사원이 1700여 곳이고 양나라가 들어선 후 사원은 2800여 곳으로 늘어나며 남조 불교는 전성기에 진입했다. 북위의 경우 정권이 수립된 후 불교는 비록 태무제 탁발도의 '불교탄압'을 한 차례 겪었으나 문성제 즉위 후 중흥하여 사찰을 짓고 석굴을 파 불상을 조각하고 벽화를 그리는 등 일시에 더할 수 없이 성행했다.
북위가 낙양으로 천도한 후 전국의 사찰은 3만여 곳에 이르러 전무후무하게 유행했던 불교와 서로 호응했다. 불교 예술, 특히 사찰과 석굴의 벽화 예술은 북조불교 석굴이 나날이 발전하고 남조 사찰이 점점 더 정밀하고 아름다워짐에 따라 더욱 심도 있게 발전하여 최고봉에 이르게 되었다.
북조가 만든 대량의 석굴 중 감숙의 돈황, 맥적산, 병령사와 신강의 약강배성, 쿠처 등의 석굴 사찰의 회화는 이 시기 불교 회화의 눈부신 업적이다. 이 시기 가장 유명하며 대표성이 가장 뚜렷한 돈황 막고굴은 북조의 석굴로서 위로는 북량, 아래로는 북주에 이르기까지 약 200년의 시간을 거쳤고 현존하는 석굴은 36개다. 굴 안의 벽화는 기본적으로 보존이 잘 된 상태이고 그림의 소재는 주로 부처 설법도, 부처 전기, 부처 본생 및 여러 종류의 인연에 관한 이야기와 공양인 상이다. 막고굴의 북조 벽화는 불교가 중국에 전래되고 중국 전통문화와 융합되는 역사적 과정을 전면적, 사실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 발전 과정은 병령사, 맥적산 등 북조 석굴화 유적에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
이 시대의 화공은 불교 도본에 따라 벽면을 그림으로 꾸미는 동시에 개인의 이해와 상상을 부단히 첨가하여 한 시대의 생활과 심미적 취향이 벽화 속으로 침투되게 했고, 이로써 외래 불교 예술은 점진적으로 중국화되며 결국 중원 문화와 모체로 결집되어 전통 문화의 연속이자 그 보충 역할을 했다.

비천상


비천은 불교 예술에서 향음(香音)의 신이라 불리며 악기를 연주할 수 있고 날아다니며 춤출 수 있는 온몸에 향이 나는 보살이다. 비천은 돈황 벽화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이 그림은 제285굴의 북위 시기 감실 벽 위의 한 쌍의 비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