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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분기
서구는 어떻게 역사의 주도권을 가지게 되었을까? 서구는 18세기 이전만 해도 세상의 중심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주도권을 영국을 기점으로 하는 서구 열강들이 손에 쥐게 되었다. 위도와 경도 그리고 0시는 당연히 영국을 기준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수많은 국제 표준들, 그리고 최초라는 수식은 서구의 몫이 되어져 갔다. 아시아 문화권은 1800년까지만 해도 훨씬 우월한 문명을 자랑했다. 문화, 과학 등 어떠한 면도 유럽의 어떠한 나라보다 동양은 그 문화적 우수성을 뒤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 청나라의 경우, 1인당 국민소득을 놓고 따지면 서유럽을 앞섰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인구수를 살펴봐도 청나라는 당시 약 3억 8100만 명이었고, 서유럽은 1억 6900만 명 정도 밖에 되질 않았다.
왜 그전까지 어떠한 면에서도 뒤떨어지지 않았던 청나라, 혹은 서구 열강의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이 아닌 영국이 산업혁명을 통해서 세상의 주도권을 산업화의 선두로 올라갈 수 있었는가? 중국의 산업혁명이 서구의 그것과 어떠한 식으로 다르게 진행되었고, 왜 산업혁명이 늦었으며 산업화 진행에도 실패했던 것인가? 이런 물음에 대해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특성들을 중심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것이 대분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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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마맹서
후마맹서는 춘추 말기 진나라 조씨의 내분과 관련된 맹약서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필기 문자 자료이며 최초로 발견된 춘추 시대의 유일한 필기 문자 자료이다. 1965년 12월 진나라의 도성인 신전(新田)이 있었다고 추정되는 산서성(山西省) 후마시(候馬市)의 동쪽 교외에서 다량의 석편과 옥편이 출토되었는데 여기에는 당시의 혼란한 시대상이 잘 드러나 있다. 당시에 약 5.000점 이상이 출토되었으나 그 중 형태와 글자가 명확한 것은 656점 이다. 대부분이 위 끝이 뾰족하고 아래는 네모진 규(圭)의 형태이며, 원과 반원 모양인 것도 일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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