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전쟁
진,초의 쟁패가 끝날 무렵, 장강 하류에서 오(吳)와 월(越)이 일어났다. 오는 주족(周族)의 일파로서 당지의 주민과 융합하였다. 오는 진이 초를 공격할 때 연합하여 여러 차례 초를 공격하였고 오왕 합려는 초에서 망명해 온 오자서와 손무를 장군으로 삼아 초의 수도 영(郢)을 점령하였다. 초 소왕은 창황히 도망치다가 진(秦)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다시 복국하였다. 그런데 초를 정벌한 오에 내분이 일어났고 여기에 월이 오를 공격하여 오의 후방을 괴롭혔다. 월은 월족의 일파로서 진과 오가 연합하여 초를 공격하는 것을 보고, 초와 연합하여 진과 오에 대응하였다. 이후 월은 초의 지원 아래 국력이 크게 진작되었고 오왕 합려는 이러한 월을 공격하다가 패하여 전사하였다. 아들 부차가 원수를 갚고자 와신(臥薪) 끝에 월을 공격하였고 그리하여 월을 속국으로 만든 뒤 계속 북상하여 패자 노릇을 하였다. 이때, 월왕 구천은 부인과 함께 오로 붙들려 가 부차의 수레를 끌고, 말을 기르며, 청소를 하는 등 각종 굴욕을 당했지만 복수와 나라를 되찾아야겠다는 일념에서 이러한 치욕을 참아 냈다. 3년 후 본국으로 돌아온 구천은 상담(嘗膽) 끝에 마침내 오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그리고 부차와 마찬가지로 서주에서 각국 제후를 불러모아 한때 패자라고 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