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의 건국
221년 4월, 손권은 공안에서 악성으로 천도하고 이름을 무창으로 고쳤으며, 무창, 하치, 심양, 양신, 사이의 여섯 현으로 무창군을 만들었다.
8월, 무창성을 수축하며 손권이 말하길,
“생존할 때는 멸망을 잊지 말며, 안정되었을 때 반드시 위험을 생각해야 된다는 것은 고대의 유익한 교훈이오. 옛날 준불의는 한나라의 명신인데, 태평스러운 세상에서도 칼을 몸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았소. 군자는 무비에 느슨할 수 없소. 하물며 현재 우리들의 몸은 변방에 있고, 시랑이 같은 악인들과 접하고 있는데, 경솔하게 갑작스런 사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소? 최근에 듣기로는, 장수들이 출입할 때 각자 겸손과 절약을 숭상하여 시종과 병사를 따르게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것은 자기를 아끼려고 생각한 행위가 아닌 것이오. 자신을 보전하고 명성을 남겨 군주와 부모를 안심시키는 것이 어찌 위험에 처하고 치욕을 받는 것이겠소? 응당 깊이 경계하고 그 큰 생명을 힘껏 숭상해야만 하며, 이것이 나의 생각과 부합하는 것이오.”
이후 손권은 위문제에게 사자를 보내 번국이 되기를 요청하여 오왕에 봉하여졌으며, 포로로 잡고 있던 우금 등을 반환하였다.
220년 조비가, 221년 유비가 제위에 오른 것에 반해 손권은 229년까지 제위에 오르지 않고 있었다. 4월, 하구와 무창에서 길조가 있었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손권은 7일에 황제에 즉위했다. 부친 파로장군 손견을 무열황제에, 어머니 오씨를 무열무황후에, 형 손책을 장사환촹에 추증했다. 자신이 제위에 오르는 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정당화한다.
“한조가 향국한지 24세이고 보낸 해가 434년인데 기의 움직이는 수가 끝나고 복록의 운행이 다하여 천하가 진멸하고 영토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불충한 신하 조비가 마침내 신기를 침탈하였고 조비의 아들인 조예는 세를 이어 간특한 짓을 벌여 명분에 넘치는 행동을 하고 제도를 어지럽혔습니다. 손권은 동남에서 태어나 시기가 움직이는 때를 당하여 하늘을 받들어 군대를 이끌고 뜻이 세상을 태평하게 하는데 있으며 견책과 형벌을 행하는 것이 모두 백성을 위함입니다. 군신, 장상, 주 와군, 모든 성 그리고 자기의 일을 가진 백성들은 모두 하늘의 뜻이 한조에서 떠나고 한씨가 이미 하늘에 제사 지내기를 끊었으므로 황제의 자리가 비었고 제사를 지냄에 있어 주인이 없다고 여깁니다. 상서로운 징조가 앞뒤로 잇달아 발생하고 천명이 저에게 이르렀으니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손권은 천명을 두려워하여 감히 따르지 않을 수 없으니 삼가 훌륭한 날을 택하여 단에 올라 요제(땔감을 쌓아두고 그 위에 불을 질러 하늘에 지내는 제사의 일종)를 드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자 합니다. 오직 그대 신명께서 이를 흠향하시고 오나라를 도와 영원히 천록을 마치도록 해주십시오.“
촉의 유선이 제위를 축하하는 사자로 진진을 보내자, 손권은 그와 맹약을 나누고 협의하여 서주, 예주, 유주, 청주를 오나라에 귀속시키고, 병주, 양주, 연주는 촉에 귀속시키며, 함곡관을 사주의 경계로 삼기로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