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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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영(1845∼1900)

개요

왕의영(王懿榮)은 갑골문을 최초로 알아본 후 갑골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렸던 인물이다. 당시의 뛰어난 문자학자이자 갑골문의 초기 수집가로 ‘갑골학의 아버지(甲骨之父)’라고 불린다.

생애

왕의영은 갑골문을 발견하고 그것의 중요성을 세상에 알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이듬해인 1900년, 서구의 연합 침략군이 북경에 진입하게 되고 당시 방어 책임자였던 왕의영은 자신이 책임을 지고 우물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 그의 이른 죽음은 갑골문 연구에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 갑골문 최초의 발견자이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던 왕의영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산동성 연대(煙臺)시에는 '왕의영 기념관'이 만들어졌다.

업적

왕의영이 갑골문을 발견하게 된 일화는 정확하지 않아 각 자료마다 다르게 서술하고 있다.

1899년 어느 여름날, 왕의영은 심한 학질에 걸리게 된다. 학질에 용하다고 해서 구해온 '용 뼈(龍骨)'에서 그는 희미한 글자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이 고대문자임을 확인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일화에서는 다르게 서술되고 있다. 1880년 쯤, 한 농부가 하남성 안양 소둔촌 북쪽 부근에서 땅을 갈아 엎으면서 갑골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떤 갑골은 희미하여 당시 사람들이 인식할 수 없는 부호가 새겨져 있었고, 어떤 것은 붉은 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1889년, 산동성 유현(維懸)에서 범유경(范維卿)이라는 골동품상이 이 갑골들을 구매하게 된다. 그는 글자가 있는 이 갑골들이 상당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12편의 갑골을 가지고 북경으로 가서 골동품 소장가이자 금석문(金石文)에 정통한 왕의영에게 보여주었다. 왕의영은 크게 기뻐하면서 후한 금액을 쳐주며 이 갑골들을 구매하고는, 범유경에게 계속 사들이게 했다.

갑골의 발견과 관련한 일화는 다르지만, 1889년이라는 발견 시기는 동일한 것으로 보아 왕의영이 1889년 당시에 갑골을 발견하고 그 중요성을 깨달은 후 수집 및 연구에 착수했다는 것은 사실로 확인된다.

그러나 이후 갑골문의 연구에서 왕의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의 안타까운 죽음때문이다. 역사적 상황으로 인해 위대한 학자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갑골문의 연구에 대한 그의 업적도 끝나버리게 되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지지 못할 뻔 했던 갑골을 발견하고 널리 알린 것은 광범위한 한자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1. 하영삼, 『사진으로 떠나는 한자 역사 기행』, 도서출판3, 2018.
  2. 이운부, 『삼차원 한자학』, 하영삼, 김화영 역, 도서출판3,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