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부
정확한 종족·원주지(原住地)는 중국사료에도 기록이 일정하지 않으나, 아마도 모용부(慕容部)·탁발부(拓跋部) 등과 같은 선비(鮮卑)의 한 부족으로서, 시라무렌(랴오허강 상류) 유역을 중심으로 유목생활을 한 것으로 생각된다. 처음에는 모용부에 복속하였고, 모용부가 탁발부에 의해 멸망하자 북위(北魏) 초 무천진(武川鎭)으로 옮겨 그 현민(縣民)이 되었다. 그러나 6세기 초 북위(北魏)가 쇠퇴하자 우문태(宇文泰, 507~556)를 중심으로 세력을 확대하였다. 534년 우문태(宇文泰)는 북위(北魏)의 효무제(孝武帝)를 살해하고 문제(文帝)를 옹립해 서위(西魏)를 건국했으며, 대승상(大丞相)으로 조정의 실권을 장악했다. 556년 우문태(宇文泰)가 죽은 뒤에 그 뒤를 이은 우문각(宇文覺)은 서위의 황제에게 선양을 받아 북주(北周)를 건국했다. 북주(北周)는 581년 수(隋)의 양견(楊堅, 文帝 재위 581~604)에게 멸망할 때까지 5대에 걸쳐 유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