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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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위(西魏) 대군(代郡) 무천(武川) 사람. 선비족(鮮卑族)으로, 자는 흑달(黑獺)이고, 우문부(宇文部) 출신이다. 그는 남북조 시대 중국 북방 소수민족 출신의 걸출한 군사가이자 정치가이자 정략가였다. 관작은 주국대장군·대사·대총재 등을 거친 서위의 실질적인 통치자였다. 집정 20여 년 동안 그는 문무를 겸비하면서 탁월한 업적을 남겨 서위를 강국으로 올려놓음으로써 훗날 북주의 건립과 북제를 멸망시키고 북방을 통일하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처음에 아버지 우문굉(宇文肱)과 함께 선우수례(鮮于修禮)를 따라 병사를 일으켰는데, 나중에 이주영(爾朱榮)에게 항복했다. 별장(別將)으로 옮겨 하발악(賀拔岳)을 따라 북해왕(北海王) 원호(元顥)를 토벌했다. 하발악을 좇아 입관(入關)하여 만사축노(萬俟丑奴)의 반란을 진압했다.
하발악이 죽은 뒤 그의 군대를 이어받아 지휘하면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고환(高歡)이 낙양(洛陽)으로 들어오자 북위(北魏) 효무제(孝武帝)를 부추겨 서쪽 장안(長安)으로 달아나게 했다. 황제를 옹위하여 고환에게 항거하면서 대장군(大將軍)과 옹주자사(雍州刺史), 상서령(尙書令)을 지냈다. 나중에 승상(丞相)에까지 올랐다.
얼마 뒤 효무제를 살해하고 남양왕(南陽王) 원보거(元寶炬)를 세워 서위를 건립했다. 중외(中外)의 여러 군대를 관할하면서 녹상서사(錄尙書事)와 대행대(大行臺)를 지냈다. 이후 20여 년 동안 서위의 조정을 좌우했다. 소작(蘇綽)과 노변(盧辯) 등을 등용해 6조의 조서(詔書)를 반포하여 행정을 정비하고 호적제를 실시했다. 죽은 뒤 아들 우문각(宇文覺)이 서위를 이어 칭제(稱帝)하고 국호를 주(周)라 했다. 문제(文帝)에 추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