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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개요
쿠빌라이가 1271년 수립한 중국과 몽골 초원지대, 그리고 만주와 연해주 지역을 기반으로 한 몽골족 왕조. 쿠빌라이가 칸의 자리를 놓고 계승 전쟁을 펼치는 와중에 다른 형제들과 가문들의 자치권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역이 위의 그림과 같은 범위였다. 쿠빌라이는 이 지역의 국호를 대원(몽골 말로는 다이온 예케 몽골 울루스, 대원대몽골국)이라 붙이고 지금의 북경인 대도와 카라코룸을 중심으로 이 지역들을 다스렸다.
몽골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울루스
대원 울루스는 몽골인들의 정복에 의해 성립되었고, 기존에는 중국이 아니었던 부분까지 포함하고 있는, 세계적인 대국가였다. 대원의 칸들은 스스로를 초원 지대의 칸이자 모든 울루스들의 칸인 대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비록 다른 울루스들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는 못하더라도 연대가 존재했으며, 이것이 울루스들 사이의 활발한 정치, 경제, 문화적 교류를 촉발시켜 팍스 몽골리카를 탄생시켰다. 대원 울루스는 다양성과 통합을 통해 국제적인 제국을 건설했다. 상인들과 선교사들, 그리고 수많은 여행가들이 동아시아에서 유럽까지 오가면서 문화를 교류하고 상품을 판매하였으며, 기술을 전파했다. 이를 통해 각지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대원 울루스의 역사
대원 울루스의 사회와 문화
한인의 입장에서 본 대원
- 몽골 치하의 한인들은 사회적, 정치적으로 차별받는 존재들이었다. 북중국 지역에 살던 한인과 남중국 지역에 살던 한인인 남인은 가장 낮은 계층의 사람들로 대우받았고, 한인들은 정치적으로 상위 직위에 올라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과거 제도는 대원의 후반기에나 시행되엇으며, 선발 인원도 적고 불리했다. 그리하여 지식인들의 사회적 위치가 낮아지면서 한인들의 사회와 문화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서민 문화가 꽃피었으며, 몽골인들의 후원 아래 각종 공연이 발전하고 원곡이라고 불리는 장르가 발전했다. 그러나 한인들은 몽골 제국 전역에 퍼지고 있던 문화들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지키는 일이 우선시했다다. 몽골의 정복과 군사적 위협에 대해 보수적으로 대응했던 것이다.
대원의 한인 역사
대원의 한인 사회
대원의 한인 문화
인물
칭기스 일족의 주요 인물 계보도
- 칭기스 칸(太祖, 1206-1227)
- 우구데이 (太宗, 1229-1241)
- 구육 (定宗, 1246-1248)
- 뭉케 (憲宗, 1251-1259)
- 쿠빌라이 (世祖, 세첸 카안, 1260-1294)
- 티무르 (成宗, 울제이투 카안, 1294-1307)
- 카이샹 (武宗, 쿨룩 카안, 1307-1311)
- 아유르바르와다 (仁宗, 부얀투 카안, 1311-1320)
- 시데발라 (英宗, 게겐 카안, 1320-1323)
- 이순 티무르 (泰政帝, 1323-1328)
- 아라기박 (1328)
- 코실라 (明宗, 쿠툭투 카안, 1329)
- 툭 티무르 (文宗, 자야투 카안, 1328-1332)
- 이린지발 (寧宗, 1332)
- 토곤 티무르 (順帝, 우하투 카안, 1333-1370)
- 아유르시리다라 (1370-1378)
- 투쿠스 티무르 (1379-1388)
참고도서
- 김호동,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 토마스 바필드, 『위태로운 변경』
- 김호동, 『아틀라스 중앙유라시아사』
- 조관희, 『조관희 교수의 중국사 강의』, 궁리
- 신성곤·윤혜영, 『한국인을 위한 중국사』, 서해문집
- 박문호의 자연과학 세상, 『몽골』, (주)엑셈
- 김종래, 『유목민 이야기』, 꿈엔들
- 박한제 외 3명,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 사계절
- 김학주, 『중국 문학사』
- 데이비드 O.모건, 『몽골족의 역사』, 권용철 역, 모노그래프, 2012.
- 라시드 앗 딘, 『칸의 후예들』, 김호동 역, (주)사계절, 2005.
- 마르코 폴로, 김호동 역, 『동방견문록』, 사계절
- 패트리샤 버클리 에브리, 『사진과 그림으로 보는 케임브리지 중국사』, 시공사
- 발레리 한센, 신성곤 역, 『열린 제국: 중국, 고대-1600』, 까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