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민지배
전국시대에 왕 중심의 중앙집권적 체제로의 변화에 따라 황제 개인이 전역의 인민을 개별적, 일률적으로 지배하는 정책. 씨족공동체들의 소유였던 토지를 소농민이 균등하게 점유하고 안정된 생산을 보장하면서, 이들을 새로운 호적제로 편성하여 모든 제민들을 국가의 영향력 안으로 편입하였다.
목적
봉건제에서 중앙집권체제로 정치체제가 변화하면서 국내체제를 안정시키는 것은 필수적이였다. 왕은 각 영지별로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국가를 왕이라는 단 한명의 지배자가 중심이 되길 원했고 이러한 일률적인 지배가 제민들의 혼란을 덜고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였다. 이로써 결국 왕의 권위를 강화하고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였다. 또한 이전에는 모든 권리가 귀족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반면 귀족의 권리를 덜고 모든 백성들을 고르게 대했기 때문에 귀족의 세력이 자연스럽게 약화되고 권력은 왕으로 집중되었다. 귀족세력이 약화되는 대신 왕은 경-대부-사(士) 순의 계급중 사(士) 계급을 군주의 관료로 임명한다. 이들은 왕의 대리인으로써 군주의 실무를 돕거나 군과 현의 장관으로 파견된다. 이들은 이전의 귀족들과는 달리 능력위주로 군주의 신뢰를 받은 사람들만이 일을 하며 군주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관료제를 형성하는 것이다. 또한 제민지배 체제는 백성들과 소작농에게 최대한 균등하게 소유농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쟁이 만연했던 시기에 전쟁물자를 대는 것 또한 중요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소농민들의 안정적인 생산체제를 보장해주고 국가는 납세를 통해 국가 재정의 안정적인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제민지배에서는 납세의 의무, 군역의 의무, 요역의 의무가 모두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데 그 중 납세와 요역을 통해 백성들은 안정적 소득을 국가는 다른 국가와 경쟁에서의 우위를 차지할 상황을 만드는 것이다.
영향
제민지배를 통해 가장 큰 변화가 나타난 것은 군역의 의무로 인한 전국시대의 전투양상의 변화이다. 춘추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각 국은 봉건적 사병집단 이였다. 영주나 족장들이 통솔하고 있던 개인 군대외에는 귀족이 전차를 타고 전사로 출전하는 것이였다. 일반 백성들은 귀족이 타고있는 전차의 수레를 따르는 보병일뿐 그 역할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전국시대에서는 상공업민, 소지주, 자작농 등 모두가 군역의 의무를 가지고 보병으로 징집되었다. 그 수가 점점 늘어나 전차를 대신해 전투의 주력이 될만 하였다. 보병이 군사조직의 중요부분으로 변하게 된것이다. 춘추까지 대국의 병력은 2만-3만 정도였는데 제민지배를 통해 군역이 의무화되자 30만에서 백만으로 이루는 군대도 가능했다. 이렇게 전쟁의 규모가 커지면서 나중에는 기병()이 출현하는데 까지 영향을 주었다. 특히 북망민족인 흉노에 자극을 받아 승마와 전쟁기술을 접목시킨 전술을 도입하였다. 말을 타고 전술을 해야한다는 특징으로 기병들의 의상은 북방민족을 따라 호복이라는 의복변화를 거쳤다. 이런 군대를 통할하는 자인 장군도 임명되는데 장군은 행정관료와 별개로 군대에대한 통괄권을 가졌다. 또한 제국 전역을 한 명의 왕이 지배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문제, 화폐, 도량형을 통일하여 아주 강력히 권력을 확보하여 부국강병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